그토록 사랑하던 누군가가 어느 날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이제 다시는 그를 볼 수 없게 된다니, 믿을 수 없다.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일까.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을 넘어 다시 살아왔다는 사람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꿈에서 보셨다는 저승사자, 영혼과 대화하는 무당…. 죽음을 통해 들여다본 우주의 다른 차원은 삶을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서울무비가 기획 중인 극장용 애니메이션 <고스트 스테이션>은 12살 소녀 별이의 시각으로 인생의 수수께끼에 다가서는 작품이다. 사건의 발단은 보물 탐사선 선장이었던 아버지의 죽음. 배가 난파되고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소녀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무당 할머니에게 듣게 된 정령들의 세계. 지상계와 천상계의 중간에 영혼이 머무르는 섬(고스트 스테이션)이 있다는 것이다. 별이는 아버지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그곳으로 가는 배를 몰래 타고, 사악한 아수라와 천상계의 은빛 날개, 그리고 여러 정령들을 만나게 된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2003 우수 파일럿 제작지원 대형 프로젝트’에 선정된 <고스트 스테이션>은 또 하나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자 <바리데기>다. 죽은 아버지를 찾아 낯선 나라로 떠난 소녀가 조우한 세계는 무섭지만 신기하고 즐겁기도 하다.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런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감초 같은 정령들 덕분이다. 갖가지 동물과 식물, 사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들과 아옹다옹하느라 별이는 날 새는 줄 모른다. 게다가 환상적인 색감으로 그려지는 고스트 스테이션과 우정, 사랑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한다.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주목할 것은 중층적 세계관이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처럼 세계는 지상계와 중간계, 그리고 천상계로 나뉜다. 여기서 파생되는 구성원간의 복합적인 관계를 통해, 인생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며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동양과 서양의 신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점도 개성적. 마라도 서남쪽에 있다는 전설의 섬인 이어도 설화를 비롯해 죽음과 관련된 동서양의 전설이 곳곳에 스며 있다. 아기장수 설화를 서양의 신화와 자연스럽게 결합해낸 <아장닷컴>의 스탭이 대거 참여한 만큼 앞으로 등장할 다채롭고 새로운 세계에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이분법적 선악구조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캐릭터와 기발한 캐릭터가 공존하는 <고스트 스테이션>의 출발은 그러나 우리 현실에 바탕하고 있다. 별이는 옆집에 사는 평범한 아이같이 생겼고, 현실계는 사실적이기 그지없다.
2004년 하반기 개봉예정인 <고스트 스테이션>은 ‘감성코믹 판타지어드벤처물’답게 다양한 코드가 조화롭게 엮인 작품을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아기공룡 둘리> <레스톨 특수 구조대>에서 연출감독을 맡았던 임경원이 총감독을, <오세암>과 <하얀마음 백구>의 시나리오를 쓴 최마용이 시나리오를 맡았다. 프로듀서는 <아장닷컴>의 이병규, 신장선.
뭐니뭐니해도 이 작품의 최고 매력은 바로 감동에 있다. 아버지와 결국은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섭리를 깨닫게 되는 12살 소녀가,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해 작은 이별을 하는 것일 뿐”이라며 하늘나라로 가는 아버지를 꿋꿋하게 보낸다. 떠나는 아버지를 붙잡고 싶은 것은 아무리 나이든 자식이라도 마찬가지일진대. 김일림/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illi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