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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세상을 조롱하라,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자유의 환영>

Le Fantome De La Liberte1974년, 감독 루이스 브뉘엘출연 줄리앙 베르토 EBS 7월19일(토) 밤 10시

“쇠사슬에 묶인 사람이 세계를 폭발시킬 수 있는 방법이란? 눈을 감는 것이다.” 루이스 브뉘엘 감독은 옥타비오 파스의 이런 이야기를 즐겨 인용했다. 브뉘엘 감독의 <안달루시아의 개>(1928)는 영화사의 흐름을 어느 정도 바꿔놓았다. 영화가 질서정연하고 현실적 세계로부터 벗어나 인간 무의식을 향해 자유로운 탐험을 시작한 것이다. <안달루시아의 개>의 충격은 세기를 뛰어넘을 만한 것이다. 어느 여인의 눈을 베는 영화의 오프닝은 ‘초현실주의’라는 사조의 시작을 알린 신호탄이 되었다. 초현실주의 운동은 조롱과 경멸, 무의식의 강조, 그리고 합리적 인과율을 무시하는 경향을 띈다. 브뉘엘 감독은 그 선봉에 해당하는 연출자였다. 그는 <황금시대>와 <비리디아나> 등의 영화에서 신성모독은 물론이고 부르주아 계급을 향한 영화적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자유의 환영>은 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후기작이다.

<자유의 환영>은 형식적으로 자유롭다. 짧은 에피소드가 쉬지 않고 연이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19세기, 프랑스의 스페인 침공으로부터 출발한다. 한 프랑스 장교가 여인의 동상에 입을 맞추려고 하자 옆에 있던 동상이 그를 후려친다. 그리고 프랑스로 무대가 바뀐다. 어느 남자가 역사적 사건을 담은 사진들을 아이에게 보여준다. 그는 사진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지 말 것을 말한다. 다음 에피소드에선 근엄한 성직자들이 등장한다. 처음엔 잔뜩 무게를 잡고 나타나지만 이후 본색을 드러낸다.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어느 여인이 휘두른 채찍을 맞으며 환호성을 지른다. 브뉘엘 감독은 <자유의 환영>에 대해 “이것은 달콤한 파괴로서의 영화”라고 논한 적 있다. 고정관념이나 사상적 편견, 틀에 박힌 영화형식에 대항해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던 감독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 영화는 화가인 고야의 그림을 서두에 장식한다. 그것은 <자유의 환영>이 역사, 그리고 그것이 은폐하고 있는 진실에 관심있음을 암시한다. 여느 브뉘엘 영화처럼 섬뜩한 장면이 적지 않다. 어느 부부의 침실에선 동물이 줄지어 나타나고, 성직자들은 세속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으며 어느 고상한 계층의 사람들은 화장실 변기에 앉아 식사한다. 종교적 교리에 대해 저항한 브뉘엘의 영화로는 <비리디아나>(1961)가 유명한 편. <자유의 환영> 역시 성직자들을 향한 조롱이 꽤 매섭다. 게다가 마르크시즘과 정신분석학을 빌려와 기이한 유머를 화면에 풀어놓는 등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과격함이 더해진다.

비평가 조앤 멜렌은 <자유의 환영>에 대해 “브뉘엘 영화 중 가장 비관적인 작품”이라고 논했다. 그것은 영화가 특정 분야에 그치지 않고 계급과 종교, 교육과 군대 등 인류 문명에 대해 전방위적인 공격을 퍼붓기 때문이다. 말년의 브뉘엘 감독은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1972)에서 <욕망의 모호한 대상>(1977)에 이르는 필모그래피를 통해 왕성한 노익장을 과시했는데 <자유의 환영> 역시 그의 후반기 걸작 중 하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