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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키퍼>와 <더 미스테리 오브 타임 앤 스페이스>

독립 게임의 가능성

게임 역사 초창기에는 한명이나 두명이 만든 게임이 적지 않았다. 녹색과 흰색의 점과 선만으로 이루어진 조악한 그림으로는 많은 인적 자원을 잡아먹을 일이 없었고, 그것도 없이 구구절절 말로만 설명하는 게임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 상상으로 대체하던 것들을 전부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시대가 왔다. 모니터 속에 완벽한 3D세계를 구현하는 건 더이상 꿈이 아니다. 하지만 꿈을 이루는 데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게임 제작 인원과 비용은 예전의 백배, 천배가 되었다. 현 단계의 기술 수준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래픽 작업에만 수십명이 필요하다. 제작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예전에는 몇만장만 팔리면 충분히 성공한 게임이었지만, 지금은 몇십만장, 아니, 몇백만장을 팔아야 간신히 수지를 맞추는 게임이 있다. 할리우드뿐 아니라 게임계에서도 대작주의의 악순환이 생겨난 지 오래다. 독창적인 작은 게임을 만들던 회사들은 사라지고 산업이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팔리는 요소들을 총집합시킨 개성없는 블록버스터들이 쏟아져나와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뿌려댄다.

아이디어의 빈곤을 돈으로 대체하려는 대작들 사이에서 고사한 작은 게임의 희망으로 떠오른 게 플래시나 쇼크웨이브 기술이다. 이제 혼자서도 게임을 만들 수 있다. 아이디어만 훌륭하다면 돈 없이도 독립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화려한 3D그래픽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과연 받아들이겠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먹혀들었다.

<주키퍼>(Zoo Keeper)는 지난해 강타한 게임으로 올해까지 아직 위세가 당당하다. 같은 종류의 동물들을 가로 혹은 세로로 셋씩 붙여서 지워나가는 간단한 게임이지만, 게임을 좋아하던 사람은 물론 게임에 관심이 없던 직장인이나 주부들까지 사로잡았다.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즐긴다는 이야기가 많고, 50대가 주축인 <주키퍼> 동호회까지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수십만명의 충성스러운 플레이어들로 증명되는 초유의 중독성에도 불구하고 플래시나 쇼크웨이브 게임은 결국 소품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태생적 한계 때문에 퍼즐 장르에만 한정된다고 생각했다.

<더 미스테리 오브 타임 앤 스페이스>(http://www.albartus.com/motas/)는 플래시 게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게임은 어드벤처다. 그것도 액션어드벤처가 아니라 수수께끼에 집중한, 텍스트어드벤처의 원형에 가까운 게임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완성도가 높지는 않다. 단조로운 그래픽 때문은 아니다. 비슷한 수준의 그래픽을 보여주는 고전 어드벤처들과 비교해도 부족한 데가 많다.

그래도 재미있다. <주키퍼>만큼은 아니지만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었고, 기어이 클리어했다. 특기할 만한 건 독립 게임이 이렇듯 큰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보다는 이 게임이 어드벤처 장르라는 데 있다. 이 게임은, 액션성이 배제된 어드벤처는 더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업계의 통설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리고 성공을 거두었다. 이 게임이 무료로 제공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어드벤처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증명된 것이다. 독립 제작자 얀 알바르투스가 없었다면 진실은 영원히 묻혀졌을 것이다.

아무리 진취적인 제작사라도 사양 장르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시장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 좋은 게임만 만들어가지고는 회사를 꾸려나갈 수 없는 것이다. 플래시나 쇼크웨이브 기술은 대작들 틈새에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을 연다. 독립 게임은 어쩌면 스스로의 성장의 딜레마에 갇혀버린 게임 시장에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