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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차마 만들지 못했던 다큐멘터리, <세계 성 풍속 기행>

세계 성 풍속 기행

여행레저 TV 매주 월·목 밤 11시

百聞不如一見.

죽은 활자가 살아 있는 동영상으로 꿈틀거릴 때,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풍문으로만 듣던 야한 이야기가 살색 동영상으로 살아난다면 침이 꼴깍 넘어가게 마련이다. X양 비디오에 열광하는 마초들이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의 산 증인들 아니던가. 그러나 이 말이 마초들만의 금과옥조는 아니다.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는 추문말고 우리에겐 성에 관해 궁금한 것들이 많다. 혹시 이런 풍문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네덜란드에서는 매매춘 여성들이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장애인들의 성욕을 해결해준다더라. 외국 어디에는 성 기구만을 모아놓은 박물관이 있다더라. 발에서 성욕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더라.

<스카이라이프>의 ‘여행레저 TV’에서 매주 월·목 밤 11시에 방영하는 <세계 성 풍속 기행>을 켜면 이런 풍문들을 동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줄루족의 순결검사부터 게이 정자은행까지, 세계의 성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이다.

<성 풍속 기행>의 원제는 <섹스 TV>이다. 캐나다의 ‘첨 TV’(chumtv.com)에서 1999년부터 제작해온 프로그램으로 여행레저 TV가 3번째 시리즈 30회를 구매해 방송하고 있다. 각 방송은 2∼3개의 각기 다른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이번 회 방송은 뭐냐”고 묻는 아저씨 마니아로부터 “너무 야한 것 아니냐”는 아줌마 안티들까지 있으니 나름대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MBC-ESPN과 Star Sports 덕분이다. 올 초 거금을 들여 집에 위성접시를 달면서부터 집에 들어오자마자 큰 대자로 뻗어 리모컨으로 MBC-ESPN을 누르는 <스카이라이프>를 시작했다. 혹시 유럽축구 중계를 하지 않을까, 윔블던 결승전을 하지 않을까, 날마다 설렌다. 그러나 채널 505번 MBC-ESPN은 지루한 야구중계에 열을 올리고, 506번 Star Sports에는 룰도 모르는 럭비 중계가 이어질 때면 내 취향을 무시당했다는 불쾌함과 거액의 스카이라이프 수신료가 아깝다는 자책감으로 리모컨을 신경질적으로 누른다. 채널 돌리는 순서는 무조건 다음 번호. 워낙 채널이 많아 어느 방송이 몇번인지 절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506번 다음은 511번 여행레저 TV. 어느 날 화면에 근육질의 남성 스트립 댄서들이 여성들의 끈적한 시선과 환호 속에 춤을 추고 있었다. 유레카! 근육질의 축구선수 대신 근육질의 남성 스트립 댄서. 꿩 대신 닭이다. 그러나 곧 카메라는 나의 관음증을 배신했다. 이들의 벗은 모습을 비추던 카메라는 이윽고 옷 입은 댄서들의 자부심 넘치는 커밍아웃 인터뷰로 이어졌다. 얼굴을 이상한 무늬로 가리지도 않은 채.

며칠 뒤 역시 채널을 돌리다 비운의 흑인 민권운동가 바야드 러스틴을 만났다. 러스틴은 루터 킹에 버금가는 흑인운동가였으나, 게이라는 이유로 역사에서 지워진 이름이다. 이 불운한 사나이는 평생 게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미 정보기관의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그 자신도 ‘검은 것이 아름답다’(Black is beautiful)라는 자긍심은 지녔으나 ‘동성애는 좋은 것’(Gay is good)이라는 자긍심은 부족했다. 러스틴편은 70년대 커밍아웃 운동 이전 동성애자들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었다.

‘엑스터시 세대’편을 보고는 나의 무지를 무지 반성했다. 엑스터시를 복용하고 테크노 리듬에 몸을 내맡기는 레이브 파티가 로큰롤 이래로 최초의 ‘섹스가 배제된’ 청년문화라는 사실은 새로웠다. 레이브 파티가 처음 시작된 80년대가 에이즈 공포증의 시대였기 때문이란다. ‘공포의 알약’ 엑스터시가 여성은 활기차게, 남성은 온순하게 만들어 어깨 결고, 몸 부딪히는, 그러나 끈적한 유혹은 없는 파티 분위기를 만든다고 <성 풍속 기행>은 알려주었다. 한 엑스터시 세대 여성의 일갈. “레이브 파티에서는 즐기는 거고, 꼬시는 건 클럽에서 하는 거죠.” ‘아마추어 포르노 비디오’편을 보니, 중년부부들의 자연스럽고 농익은 포르노가 젊은 연인들의 연출된 포르노보다 인기가 더 좋단다.

이처럼 <세계 성 풍속 기행>은 늙은 포르노 스타, 죽은 게이인권 운동가, 살찐 사람들, 노인들, 엑스터시 복용자들과 같이 정상성의 영역에서 내쫓긴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맡긴다. 그러나 이들을 미화하려고도, 관음하려고도 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를 전한다. 그리고 성 과학의 선구자들, 성 기구의 역사, 남성화의 추세 등 성의 역사에 대한 보고서도 잊지 않는다. 이미 이 프로그램은 국내 몇몇 대학의 여성학, 인류학 강의에서 교재로 사용될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밖에도 <성 풍속 기행>에는 한국사회가 궁금했으나 차마 만들지 못했던 다큐멘터리로 넘쳐난다. 여성의 생리에 언제 죄의식이 덧씌워지고, 여성의 체모가 왜 ‘흉한 털’이 되었을까? 성에 중독적으로 집착하는 색정증에는 왜 걸릴까? 왜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유럽에서 인구별 포르노 제작편수가 가장 많은 포르노 산업의 메카가 되었을까? 수십년을 함께 산 남편이 어느 날 “여보, 실은 나 동성애자야”라고 커밍아웃을 한다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물론 백견이 불여일행이지만.

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

TV시청률 순위

2003. 7. 28 ∼ 8. 3 자료제공: TNS미디어코리아

1/ 노란 손수건/ KBS1/ 29.8%

2/ 보디가드/ KBS2/ 28.6%

3/ 개그콘서트/ KBS2/ 27.4%

4/ 섹션TV 연예통신/ MBC/ 22.8%

5/ 야인시대/ SBS/ 22.0%

6/ 해피투게더/ KBS2/ 21.7%

7/ KBS 뉴스9/ KBS1/ 21.1%

8/ 신동엽 김원희의 헤이헤이헤이/ SBS/ 20.0%

9/ 앞집여자/ MBC/ 19.8%

10/ 사랑과 전쟁/ KBS2/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