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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관음증,북쪽 응원단에 대한 언론의 경향

그녀들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둘렀다. 그녀들의 공식 이름은 ‘북측 응원단’. 미디어가 붙여준 풀 네임은 북한 ‘미녀’ 응원단. 2003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에 걸맞게 대학생으로 대폭 물갈이를 했단다. 그녀들은 이번에도 어여쁜 입술로 “조국 통일”을 노래하고, 아리따운 미모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용을 과시할 것이다. 남쪽 아저씨들은 넋을 잃고 침을 흘리겠지. 지난해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때처럼.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남녀평등을 강령에 새겨넣은 조선노동당이 지난번의 성차별적 응원단 파견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미남 응원단’을 파견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했다면 물론 거짓말이다. 그래도 또다시 ‘예쁜’ 언니들만 뽑아 보낼 만큼 과감할 줄이야. 아마 북조선의 관료들은 북쪽 응원단의 미모를 체제 선전의 수단으로 생각하나보다. 그런데 북쪽은 지난 아시아경기대회 때 남쪽 언론이 응원단의 미모만 부각시킨다고 항의까지 하지 않았던가. 반세기가 넘는 분단으로 정서가 너무 달라져서인지 그 속내를 도통 알 수 없다.

또다시 침 묻은 카메라가 미녀 응원단의 꽁무니를 쫓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민족의 이름으로 용서되는 한판 관음증의 축제다. “역시 남남북녀네요.” “평양에는 더 예쁜 아가씨들도 많습네다.” 상투적인 질문에 뻔한 답들이 방문 첫날부터 쏟아진다. 뉴스가 미녀 응원단의 맛보기용 화면을 보여주면, 교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은 자세한 주석을 달아준다. 그러는 사이 카메라는 몇명의 ‘대표 미녀’를 색출해낸다. 애국의 열정으로 들끓는 네티즌들은 팬 사이트를 만들며 환호한다. 민족화해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여성단체는 침묵한다.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때처럼. 북에서 열리는 국제 스포츠대회에 남쪽 미녀 응원단을 보냈다고 해도 어색한 침묵으로 용납했을까.

지난해 가을, 다대포항은 충격이었다.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개막을 며칠 앞둔 9월 어느 날, 원산항을 출발한 만경봉호가 부산 다대포항에 돛을 내렸다. 기습처럼 분홍색, 자주색, 옥색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 여성들이 만경봉호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그녀들을 쫓는 탐욕스러운 카메라, 노골적인 시선들을 잊을 수가 없다. 술렁이는 환영 대회장을 하이에나처럼 서성이던 기자들 사이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조명애 있냐”였다. ‘조명애’는 남한에서 처음으로 열린 민간교류 행사인 2002년 ‘8·15 남북통일대회’를 통해 남한 언론이 선발한 최고의 히로인이었다. 압도적 다수가 남성인 남조선 기자 선생님들이 조명애를 주목한 단 하나의 이유는 ‘미모’였다. 남조선 기자 오빠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조명애는 없었지만, 오빠들의 눈높이에 걸맞은 다른 조명애들이 있었다. 리유경, 채봉이…. 남조선 기자 선생들이 남쪽의 마초들에게 소개한 대표 선수들이었다.

이처럼 남북 마초들의 호흡은 어찌나 환상적이던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척하면 척이다. 북의 마초들이 보내면 남의 마초들이 키워준다, 는 새로운 통일전선전술은 21세기 민족화해의 시나리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민족의 관음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면 이념 따위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무기는 남조선 방송사의 카메라다. 마치 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풀지 못한 관음증을 분풀이하듯, 수많은 카메라들은 그녀들을 스토킹할 것이다. 2003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기간 내내.

다음은 남쪽 아저씨 부대의 부화뇌동이 이어진다. 중년 사나이들이 대부분인 아저씨 부대는 북쪽 응원단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남북 공동응원의 선봉에 선다. 북쪽 응원단은 남쪽 아저씨들이 그리워하는 많은 것들을 재현한다. 북쪽 응원단의 ‘예스러운’ 노래와 율동은 아저씨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북쪽 응원단의 다소곳한 차림새와 조신한 몸가짐은 되바라진 남쪽 여성들에 지친 아저씨들의 심신을 위로한다. 그들이 잃어버렸고,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살아 돌아왔다. 어찌 열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대회가 중반쯤에 접어들면 아저씨들은 응원단 ‘처녀’의 이름까지 외워서 불러댄다. “XX야, 내일 다시 만나자∼.” “XX야, 통일될 때까지 기다리래이.” 북쪽 응원단의 이름을 희롱하듯 불러대는 아저씨들을 보면, 통일 조국에서 남쪽의 아저씨들이 벌일 작태가 눈에 선하다.

북쪽 응원단이 부르는 응원가 중에 <여성은 꽃이라네>라는 노래가 있다. 정확한 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여성은 가정의 꽃이고, 나라의 꽃이라는 내용이다. 남쪽 여성이 사무실의 꽃이 아니듯, 북쪽 응원단은 통일의 꽃이 아니다. ‘여성’ 없는 통일은 반쪽짜리 통일일 뿐이다.

지금 미디어는 반쪽짜리 통일을 선동하고 있다. 남북의 마초들이여, 여성은 당신들의 식민지가 아니다. 당신들의 민족에는 여성이 없다는 사실은 이제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제발 대구에서만큼은 관음증을 자제해 달라. 여성은 통일의 길에 당신들이 즈려 밟고 가도 좋은 꽃이 아니다. 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