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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2]

<네멋…> 이후 파편적인 캐릭터의 흔적은 ‘MBC표 드라마’에서 부쩍 잦아진다. <내 인생의 콩깍지>에서 박광현은 소유진과 10년 동안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박광현이 헤어진 연인 소유진을 우연히 만나 급히 지폐에 연락처를 받아놓았는데 그 돈을 백화점에서 써버렸다. 뒤늦게 백화점으로 달려가 그 돈을 찾느라 난리법석을 피우는데 엉뚱하게도 자길 도와주려 애쓰는 여직원과 눈이 맞아 샛길 연애를 시작한다. 정해진 운명을 향해 직선처럼 곧장 나아가지 않는 게 실제 인생이다. <눈사람>에서 조재현은 자기와 미묘한 관계에 빠져드는 처제를 기계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완전히 외면하거나 푹 빠져드는 게 아니라 그 경계선에서 미묘하게 떨린다. 파편적인 인간은 파편적인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앞집 여자>의 변정수는 이를 극적으로 희화화한 경우다. 20%의 감정만 주고 20번째 만남에서 관계를 정리하는 능숙한 바람기와 아내와 주부의 기능을 분리해서 완벽하게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그의 원칙에 현모양처형 주부 유호정은 반박할 말을 잃는다. 어느덧 자신도 변정수와 비슷한 길을 가게 되건만 객관적으로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다가 엿되는 수가 있다”는 요즘 말투와 문어체가 혼재하는 퓨전사극 <다모>에서 캐릭터의 현대성을 따질 수는 없다. 대신 여기선 새로운 여성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조선여형사 채옥(하지원)은 땀이건 물이건 홍건히 젖어 있기 일쑤다. 유례없이 동적인 여성이기 때문이다. 일정 간격으로 펼쳐지는 활극에서 그의 액션은 남자의 그것을 능가하거나 최소한 동등하다. 사랑하는 ‘나으리’가 위험한 짓 하지 말라고 해도 자꾸 위험에 개입함으로써 주위에 자신이 존중받을 받한 존재라는 걸 증명해간다.

드라마의 고전성을 탈피하려면 좀 더 현대적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건 때론 추하고 더러운 삶의 이면을 과장하지 않고 들춰내는 모던함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에 <네 멋‥>의 복수나 경, 미래처럼 순간순간 급변하는 파편적인 캐릭터들의 등장은 '얼마나 사람과 호흡하느냐'가 요즘 드라마의 관건이 된 것과 같은 맥락임을 보여준다.

<눈사람>

<앞집 여자>

스타 PD들은 왜 추락했는가

<네멋…>에서 <다모>와 <앞집 여자>로 이어지는 흐름에서 뜻밖의 현상이 발견된다. 스타 PD의 졸작 내지 범작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명성을 딛고 독립해나간 프로덕션 시스템의 외주 생산물인 반면 일련의 화제작은 MBC 미니시리즈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그것도 날렵한 프로덕션 제작방식이 아닌 ‘공장’이라 불리는 드라마국 제품이다(<앞집 여자>처럼 ‘무늬’만 외주 제작인 것도 있긴 하다). ‘MBC 드라마국 안에 무슨 일이?’라는 궁금증이 일어나는 대목이다.

<네멋…> <옥탑방 고양이> <앞집 여자>에 대해 박성수 PD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일상생활의 속도감을 지닌 드라마로 완벽함이 아니라 괜찮음으로 승부한 드라마”라는 점과 “데스크들이 다 안 된다고 봤던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옥탑방…>의 김사현 PD는 “<네멋…>은 드라마국에 상상하기 힘든 바람을 일으켰다. 기존 드라마 문법으로 보면 망할 수밖에 없는 구도였고, 내부에서 심각하게 걱정했던 작품이었으니까.” <앞집 여자>의 박은령 작가는 단막극 공모에 당선된 뒤 “계속 물먹다가” 처음으로 시리즈를 쓴 것인데, 방송 직전까지 맘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애초 단막극 대본이었으나 “백전고수 프로바람꾼 주부라는 앞집 여자의 캐릭터”에 주목한 박종 드라마국 국장이 미니시리즈로 확대한 작품인데(기획은 그가 국장이 되기 전인 올 초에 시작됐다), 수많은 반대의견을 헤치며 지금에 이른 것이다. 수년 전부터 준비해온 <다모>의 고초도 남다를 것이다. <까레이스키> 이후 대작을 회피해온 MBC에서 모처럼 큰돈을 들인 <다모>의 연출은 익히 알려졌듯 연출 입봉 PD가 맡았다. 프로덕션 제작에서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졌고, 그런 ‘기습’들이 1992년 이승렬의 <질투>가 일으켰던 드라마의 큰획을 새롭게 긋고 있는 셈이다.

“프로덕션 제작은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성공이 수익과 직결되니 흔히 말하는 성공요소들, 드라마 소재와 내용, 캐스팅, 연출자를 검증된 무난한 방식으로 택하게 된다. 새로운 게 나오기 힘든 구조다. 드라마국은 시청률이라는 자본의 논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시청률이 잘 안 나와도 작품이 좋으면 평가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박종 국장)

<백야 3.98> <올인> 등 이름난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대작들은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영화로 치면 할리우드형 드라마다. 손님은 끌지언정 새로운 작품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프로덕션을 통한 외주 제작방식은 애초 방송사의 관료적인 공장 시스템이 주는 획일성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제시됐다. 고석만, 김종학 등 초기 스타 PD들이 방송사를 나서며 내건 명분이지만 이제는 거꾸로 프로덕션 시스템이 재점검의 대상이 돼버렸다. 인정옥 작가는 “공장의 경직성 해소 등 몇 가지 이유로 프로덕션을 통한 외주 제작이 장려되고 있으나 지금은 스타 PD들이 나가서 돈을 더 많이 벌게 됐다는 것말고 달라진 게 없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자본(시청률)의 경쟁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프로덕션 시스템과 좀 심하게 말하면 돌아가며 작품 한번씩 만드는 공장 시스템 가운데 창의적 작품을 내놓는 건 의외로 후자쪽인 것이다.

혹자는 미니시리즈와 일일극·주말극을 바둑에 비유한다. 전자가 PD들의 사기에 영향을 끼치는 ‘세력’이라면, 후자는 회사 전체의 이익을 위해 더 중요하게 봐야 할 ‘실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MBC 드라마국이 당연히 늘 ‘선’은 아니다. <인어아가씨>의 고무줄 연장 방영이 그렇듯 실리를 위해선 무리수를 아끼지 않는다. 현재 일일극과 주말극에서 재미를 못 보고 미니시리즈로 세를 얻고 있는 형국이니 언제 또 실리를 얻기 위한 수를 둘지 모른다. MBC의 한 PD는 “성공작으로 평가받는 미니시리즈에 대해 데스크들은 어쩌다 성공한 도박 같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지금의 드라마국 상황을 대세 변화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성욱 lewook@hani.co.kr

변종드라마의 새 요소들

옛날 드라마엔 없다. 요즘 드라마에만 있다!

■ 안 예뻐도 괜찮아

예쁘지도 않고 돈도 없고 재능도 없는 여주인공. <명랑소녀 성공기>의 양순(장나라)과 <옥탑방 고양이>의 정은(정다빈)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평범한 소녀가 평범한 사랑을 이룬다는 점에서는 정은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양순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재능을 숨기고 있는 데다가 재벌 2세와의 사랑을 이루는 신데렐라에 가깝다.

■ 주인공보다 멋져요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연적. 삼각관계의 한축이 얄밉고 비열하게만 그려졌던 데 비해 <다모>의 난희(배영선)는 착하고 단아하며 고운 여인이다. 그러나 “밤마다 윤과 채옥의 뒤를 따라다니며 스토커짓 한다”고 비난하는 시청자도 있다.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캐릭터는 <네 멋대로 해라>의 미래(공효진). 미워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연적이다.

■ 허술대왕, 무식왕자

야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남자주인공. <대망>의 재영(장혁)은 드라마 제목과 어울리지 않게도 욕심이라고는 없이 허술하다. 예쁜 색시 맞아서 집 한채 짓고 소박하게 사는 것이 그의 꿈. 요즘 눈에 띄는 인물은 <보디가드>의 홍경탁(차승원). 야심이 있다 해도 이룰 방도가 없는 단순무식한 청년이다.

■ 복수씨 죽은 거예요?

열린 결말. 주인공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보여주지 않는다. 복수(양동근)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네 멋대로 해라>가 대표적인 경우. 영화에서는 종종 찾아볼 수 있지만, 확실한 결말을 추구하는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이다.

■ 형식을 벗어나

자유로운 형식. 뮤지컬을 도입한 <내 인생의 콩깍지>처럼 파격적인 형식의 드라마가 생겨나고 있다. 복수와 경(이나영)이 울산에서 보내는 시간을 판타지처럼 표현한 <네 멋대로 해라>도 이 경우에 포함될 수 있겠다.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1]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2]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3]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4]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