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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2]

인간도 세상도 영화제도… 선명한 것은 없구나

김기덕 감독과 동행한 정한석 기자의 로카르노 다이어리

현지 팬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김기덕(사진 맨 왼쪽) 감독.

로카르노=글·사진 정한석 mapping@hani.co.kr

나쁜 남자 혹은 선승과 함께

8월12일, 로카르노의 여행길에 과거의 나쁜 남자, 혹은 지금의 선승을 만나다. 10여 시간을 날아가 도착한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서 환승 비행편을 기다리던 중 김기덕 감독은 대뜸 영화제의 상 얘기를 꺼낸다. “영화상영만 딱 하고 바로 오면 좋죠. 하지만 사정상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까 폐막식까지 있는 거예요. 사실, 나는 내가 영화제에서 상 못 탈 거라는 걸 알아요. 왜냐하면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전문적으로 영화를 보는 비평가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취향이 다 다른 사람들이 주는 거기 때문에….” 이번 영화제 참석에 대한 사연에서부터, 지금의 사회분위기, 영화철학, 자신을 해석하는 한국 영화비평 담론에 대한 재평가, 그리고 현재 쓰고 있는 시나리오 중 하나인 <빈집>(가제)에 대한 단초에 이르기까지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하며 그렇게 두 시간을 훌쩍 보내다. 드디어, 한밤중에 도착한 로카르노, 한적한 시골 마을처럼 보인다. 27년 만에 찾아온 폭염으로 기온은 41도까지 달아올랐지만, 도시의 중심부를 끼고 도는 커다란 호수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카사노바>

순환 혹은 정지

8월13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기자시사가 2시 그루잘 극장에서 열리다. 올해 로카르노에 출품된 한국영화는 총 3편. 경쟁작에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그리고 ‘오늘의 시네아스트’ 부문에 박경희 감독의 <미소>(박경희 감독의 <미소>는 이미 모든 공식일정이 끝난 뒤였다)와 김진아 감독의 <그 집 앞>이 올라 있다. 그중에서도 김기덕 감독의 신작은 이 올해의 대상 예상작으로 고바야시 마사히로의 <헤어드레서>와 함께 손꼽을 정도로 이미 기대를 모았다. 미리부터 진을 치고 있다가 극장의 문이 열리자 쏟아져 들어가는 기자들의 표정에서도 같은 기대를 엿볼 수가 있다. 영화의 타이틀을 뒤로 하고, 사계절을 돌아 다시 봄까지 인간(승려)의 한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여 만들어낸 이 영화는 김기덕의 영화세계를 다시 질문하게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영화는 ‘고립’의 장소에서, 다시 제자리로 ‘귀환’하고야 마는 인물들을 통해 김기덕의 순환 논리를 여전히 유지하지만, 전에 없이 ‘한국 문화’의 정서를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남들은 김기덕이 위선을 부린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모자를 벗은 기분으로 만든 영화”라고 김기덕 감독은 표현했다. 시사회가 끝난 저녁 ‘한국영화의 밤’ 행사장에는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그 집 앞>의 김진아 감독과 이 영화의 공동 제작자로서 이곳을 찾은 UC어바인의 김경현 교수 등이 자리했고, 이렌느 비냘디 로카르노영화제 집행위원장 외에도 세계 각국의 영화제 집행위원장들이 모여들었다. 애초 끈질기게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초청하고자 노력하다 결국 로카르노에 넘겨주게 된 산 세바스찬 영화제 집행위원장 미켈 올라시레구이는 “캐릭터와 이야기는 변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전작과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라며, 질적인 단절보다는 양상의 변화로서 이번 영화를 평가했다.

그렇게 한국영화에 대한 호응과 갈채를 뒤로 하고 피아자 그란데로 향한다. 로카르노영화제의 상징이자, 자랑인 피아자 그란데의 야외상영.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스크린, 거기에서도 가장 맨 앞에 앉아 올해의 로카르노가 오마주를 바친 작품 중 하나인 페데리코 펠리니의 <카사노바>를 본다. 텔레비전 모니터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판타지의 장중함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그 화려한 매혹의 강도로 본다면 그의 영화 <사티리콘>과도 비교가 가능할 정도이다. 젊은 날의 카사노바가 수많은 여인들을 거치며 끝내는 노쇠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니노로타의 음악과 펠리니가 자신의 영화 <The Clown>에 출연하여 “나의 알리바이”라고 말했던 치네치타 스튜디오가 모든 환상을 뒷받침한다. 그러다가 영화의 마지막에 난데없이 삽입되는 늙은 카사노바의 얼굴 클로즈업. 쭈글쭈글한 주름과 반쯤 뒤집혀 벌건 살을 들어내는 눈꺼풀, 한 노인의 초라한 얼굴을 갑작스럽게 마주하는 심정이란. 이렇게 갑작스럽고 강렬한 클로즈업은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오프닝 장면이나 루이스 브뉘엘의 <안달루시아의 개>에서 눈알을 베어내는 정도가 아니라면 줄 수 없는 충격이다. 어떤 영화들은 짧은 한숏으로 그 영화의 모든 의미를 정지해 설명하고 버텨내는 때가 있다. <카사노바>가 그렇다.

대상작 <카모스 파니>는 어떤 영화?

파키스탄 여성 형실 고발

황금표범상을 받아든 <카모스파니>의 감독 사비아 수마르

제56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황금표범상을 받은 <카모스 파니>는 파키스탄 여성감독 사비아 수마르의 첫 번째 극영화이다. 사비아 수마르는 <누가 처음 돌을 옮길 것인가?> <왜냐고 묻지마라> 등 두편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시작하였으며, 파키스탄 여성에 대한 인권의식을 영화의 전면에 세워왔다. <카모스 파니>는 1970년대 말 군사정권 시기하에 한 청년이 이슬람 종교에 빠지면서 자신과 다른 종교를 가진 어머니를 박해하여 그녀를 자살로까지 몰고가는 비극적인 내용이다. “영화생산이 전무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한 파키스탄에서 여성감독이 이슬람 근본주의에 의해 희생된 여성들의 운명을 유연하게 재조명한 고발정신”이 돋보였다는 것이 심사평이다. <카모스 파니>의 수상은 현재 이렌느 비냘디 체제하의 로카르노영화제가 추구하는 정치적인 지향과 어울렸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사비아 수마르는 이 영화에 대해 “<카모스 파니>는 저항할 수 없는 바로 그 역사와 정치의 현재에 관한 이야기이며, 격동하는 변화와 삶의 끝없는 길을 내포한 파키스탄”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1]

▶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2]

▶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