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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나의 힘
김혜리 2003-09-01

소설 각색한 영화 제작에 눈돌린 할리우드, 가을 개봉작들에도 문학 영화 줄줄이

올 여름 흥행보증수표로 믿었던 몇몇 블록버스터, 속편들이 박스오피스에서 된서리를 맞는 교훈적 경험을 한 할리우드가, 문학작품 각색에 다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버라이어티>가 보도했다. 실제로 대중도 진지한 영화에 대한 갈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진단이 대두되면서 만화와 비디오게임, 흘러간 TV드라마에 밀려 할리우드의 창작 소스로서 위치가 약화됐던 본격소설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성인 독자층을 겨냥한 소설을 각색한 영화는 스튜디오 전성기에 대작영화의 재료로 각광받았으나 근년 들어서는 주로 스튜디오들이 거느린 예술영화 전문 영화사를 통해 틈새시장을 겨냥한 프로젝트로서 제작돼왔다. 하지만 문학성 높은, 말하자면 캐릭터와 스토리가 복잡한 소설일수록 스튜디오들은 일정 규모 이상의 투자를 망설여온 것이 사실이다. <버라이어티>는 우선 이같은 업계 동향이 역전될 가능성을 시험할 케이스로 웬만한 여름영화 못지않은 제작비가 투입된 유니버설의 <씨비스킷>과 폭스의 <마스터 앤 커맨더>, 미라맥스의 <콜드 마운틴>을 꼽았다.

이중 선발주자로 청신호를 울리고 있는 것은 로라 힐렌브랜드의 논픽션 소설을 게리 로스 감독이 연출한 <씨비스킷>. 지난 7월25일 전미 2천개 미만 스크린에서 조심스럽게 출발한 <씨비스킷>은 개봉 첫 주말 흥행 5위에 머물렀으나 여름영화로서는 드물게 지구력을 발휘해 미국 내 수입 1억달러 이상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해양소설이 원작인 <마스터 앤 커맨더>는 피터 위어 감독과 러셀 크로를 끌어들이면서 내부적으로 아예 프랜차이즈로 기획된 것으로 알려졌고,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콜드 마운틴>은 니콜 키드먼, 르네 젤위거의 캐스팅을 내세워 12월 흥행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문학 원작 영화에 대규모 예산을 쏟아넣는 일을 여전히 모험으로 여기는 스튜디오들은 공동 투자자를 찾아 위험부담을 분산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유니버설은 <씨비스킷>에 드림웍스와 스파이글래스를 끌어들였고, 폭스도 1억달러 넘게 제작비가 든 <마스터 앤 커맨더>의 지분 절반을 미라맥스와 유니버설에 반씩 나눠 팔았다. 그러나 미라맥스는 예외적으로 모회사 디즈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품질에 자신있다는 이유로 <콜드 마운틴>의 비용 8천만달러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전통적인 현상이지만 가을 이후 미국 극장가에서는 더 많은 문학 원작 영화가 개봉할 전망이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을 비롯해 <모래와 안개의 집> <휴먼 스테인> <타임라인> <미스틱 리버> <모자 속의 고양이> 등이 개봉 스케줄을 잡은 영화들. 이 밖에 각 스튜디오의 컨베이어 벨트에는 <게이샤의 추억> <코렉션스> <린드버그> <오션 파크의 황제> <카발리에와 클레이의 놀라운 모험> 같은 작품들이 프로덕션 공정을 밟고 있다.

이들 문학 원작 영화에 대해서는 관련되지 않은 스튜디오 관계자들도 은근히 성공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 <버라이어티>의 관찰. 개인적으로 문학 취미가 있는 작가, 감독, 제작자가 많은 탓도 있지만 문학 원작 영화의 부상이 단명한 히트 상품에 의존하는 대중문화의 흐름을 바꾸고 단조로운 할리우드 제작 풍토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이 잡지의 분석이다.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