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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이끄는 차세대 여성 프로듀서 - 안수현,오은실 [4]

즐거움을 팔고 싶다

| 안수현 |

2003년

| 프로듀서의 길

역사를 전공하기는 했지만 많은 80년대 학번이 그랬듯 안수현(33)씨도 “역사 자체보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더 집중했다. 운동권으로 3학년까지 지내다 선택을 해야 할 시기가 됐다. 휴학을 하고 “도대체 뭐 하며 먹고 살아야 하나”를 화두처럼 안고 배낭여행을 떠났다. 복학해서는 취업이 아니라 졸업을 위해 밀린 학점 따기에 매달렸다. 그러다가 학교 근처에 있던 신씨네의 공채 공고를 봤다. ‘시네키드’는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니 처음으로 거짓말하고 돈을 훔쳤던 게 영화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극장에서 보고 기절할 뻔했다. 화면의 사이즈와 컬러에 압도당해서.” 그뒤로 틈만 나면 “어두컴컴하고 큰 극장에서 빛으로 영사되는 순간의 쾌감”을 찾아 극장에 드나들었다. 옆집 중학생 언니의 교복을 빌려 입고 육성회비를 입장료로 바꿔치기 하면서. 그 기억을 가지고 영화사에 들어갔는데, 영화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곳에선 생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작가주의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무성했다.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면서 일이 붕 떠버렸고, 그 참에 영화가 보고 싶어 뉴욕으로 갔다. 4년 동안 밀린 숙제 해치우듯 하루 서너편씩 열등감을 부추기던 영화를 봤고, New Schol University에서 영화공부도 하며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 사이 감독의 개인적인, 철학책 같은 영화보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상업영화를 더 좋아한다는 걸 확인했고, 감독보다는 프로듀서로 미래를 설계했다.

| 프로듀서의 시련

뉴욕에서 만난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가 ‘프로듀서가 되려면 현장 경험이 꼭 필요하다’고 조언해주어 <봄날은 간다>의 제작부장으로 일을 다시 시작했다. 지난해 봄, 영화사 봄에 합류해 프로듀서를 맡게 된 게 이었다. 캐스팅이 한번 어그러지면서 오리무중에 빠진 상태였다. 아쉬움은 영화의 시작부터 함께하지 못한 데서 생겨났다. 틀을 짜기보다 제작진행에 더 힘을 줘야 할 시점이니 감독과 작품에 대해 논의할 여지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의미있는 작품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을 다했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유연한 시각으로 큰 것을 보고 가야 하는 프로듀서의 임무를 다하며 감독과 시너지 효과를 낸 것 같지 않았다. 또 현장에서 프로듀서가 필요한 건 촬영지 섭외가 어그러지는 등 어떤 ‘사고’가 나서 판단을 내려야 할 때인데, 그때마다 작품의 퀄리티를 위한 최적의 선택을 했는지 자꾸 되묻게 됐다. 그래도 1세대 여자프로듀서에 비하면 훨씬 홀가분해진 시절이라고 본다. “1세대 프로듀서는 투자문제를 포함해 영화의 리스크까지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제작자의 처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여자들이 하기에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그냥 프로듀서다. 투자, 마케팅, 배급 등이 모두 분업화돼 있다. 프로듀서는 감독과 함께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다.”

| 프로듀서의 꿈

대학 시절, 선배인 김귀정이 열사의 이름을 얻게 되는 비극적 사건이 벌어졌다. 굳이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모두들 분노에 차 거리로 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런 공감대 속에서 소외받는 이가 있었다. 오렌지족이라고 손가락질받던 한 친구가 있었고, 자신을 포함해 누구 하나 ‘함께 가자’며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시위 대열에 합류한 그 친구를 거리에서 만났고, 나중에 편지를 받았다. “너희가 먼저 나를 소외시켰다.”

그때 느꼈던 일종의 부채의식과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영화에 소외감을 느꼈던 초기의 경험이 어우러졌기 때문일까, 그는 만들면서도 보면서도 즐거운 영화를 만들겠다고 한다.

생산자도 소비자도 소외받지 않는 영화. “딱히 장르로 말하기는 어렵고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가 좋다.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영화가 좋다.” 최근에는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바람난 가족>이 좋았다. 절망적이고 힘든 상황을 과정으로 거치게 되더라도 결국은 희망을 갖게 되는 영화. 다음 작품이 그 희망과 딱 맞아떨어지긴 어려워 보인다. 그가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닌 호러 장르인 <쓰리> 2편을 맡게 됐으니까. 글 이성욱 lewook@hani.co.kr·사진 이혜정 socapi@hani.co.kr

오기와 근성은 나의 힘

| 오은실 |

2000년 <청춘>

| 프로듀서의 길

프로듀서로 크레딧을 올린 작품은 <청춘> 한편뿐이지만 오은실(39)씨는 영화계 경력이 만만치 않은 프로듀서다. 92년에 <첫사랑> 연출부부터 시작해 10년 넘게 영화일을 했다. 그가 처음 영화에 매력을 느낀 것은 대학 4학년 때 노래, 공연, 연극, 영화를 망라하는 총체극을 하면서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당시 영화운동단체였던 ‘영화마당 우리’를 드나들다 이곳에서 단편영화를 연출하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91년 동국대 영화과 대학원에 들어간 그는 연출부를 하고 싶다며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지인의 소개로 참여한 작품이 이명세 감독의 <첫사랑>. 그는 이 영화의 연출부를 하면서 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접었다. “<첫사랑>을 하면서 사부를 만난 거죠. 그런데 그 사부가 워낙 대단한 분이라 옆에서 지켜보면서 감독이란 일은 결코 내 능력으로 안 되겠다는 걸 깨닫게 했어요.”

감독이 아니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궁리한 끝에 찾아간 곳이 하명중영화사. 그는 93년부터 1년간 여기서 외화 5편을 홍보했다. 그뒤 한국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프리랜서로 독립,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 구임서 감독의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 배창호 감독의 <러브스토리> 등의 홍보, 마케팅을 담당했다. 차츰 작품 전체를 책임지는 일에 욕심이 생긴 그는 프로듀서로 크레딧을 올리지 않았지만 씨네락픽처스가 제작한 <박대박>(1997)에서 실질적인 프로듀서의 일을 수행했다. 그러나 기획부터 감독, 작가와 함께 일했던 <박대박>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때부터 그는 프리랜서 프로듀서로 독립해 일하기로 결심한다.

| 프로듀서의 시련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영화계에서도 프리랜서는 고달프다. 특히 오은실씨처럼 회사에 소속돼 있을 때 성공작을 내놓지 못한 프로듀서라면 말할 것도 없다. 97년부터 2년간 그는 여러 영화를 기획했지만 한편도 제작에 들어가지 못했다. “너무 무모했던 거 같아요. 메이저급 영화사도 작품 들어가기가 어려운 형편인데 투자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경력이 없었으니까요.” 99년 그는 신생영화사인 원필름(대표 이원기)에 들어갔고 이곳에서 기자의 세계를 소재로 <엠바고>라는 영화를 준비했다. 그러나 <엠바고> 역시 카메라에 담길 기회는 없었다. 기획하는 영화마다 좌초되던 불운은 곽지균 감독의 <청춘>으로 비로소 끝났다. 하지만 곽지균 감독이 시나리오까지 써서 들고온 이 영화도 쉽게 촬영에 들어간 작품은 아니었다. 서둘러 봄장면을 찍지 않으면 촬영을 1년 연기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투자사가 없는 상태에서 첫 촬영에 들어갔고 순제작비 9억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전체 촬영을 마쳐야 했다. “다행히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었지만 아쉬운 점이 많죠. 감독이 최고를 뽑아낼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프로듀서의 일인데 그만큼 할 수 없었거든요.”

| 프로듀서의 꿈

<청춘>으로 프로듀서 데뷔를 했지만 그는 아직 새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그간 꽤 많은 영화를 기획했지만 번번이 투자유치나 캐스팅 과정에서 무산됐기 때문. “일단 기획을 하면 버리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믿고 함께 일하는 감독, 작가, 스탭을 생각하면 오기와 근성이 생겨나요. 그런 책임감과 내가 하는 영화가 괜찮은 작품이라는 자신감이 빨리 그만두게 만들지 못하는 이유 같아요.” 지금 그가 준비 중인 작품은 어느 가족이 접하는 기괴한 살인사건을 코믹하게 그린 <장수만세>, 변종 로맨틱코미디인 <내 사랑을 우습게 보지 마세요>, 호러판타지인 등 세 편. “제 취향이나 능력으론 제작비 50억원 넘는 대작은 못할 거예요. 20억원 내외의 작지만 단단한 영화가 어울리고 판타지나 코미디를 좋아해요.” 물론 아직은 그가 만들고 싶은 이상적인 영화 이전에 준비 중인 영화가 빨리 촬영에 들어가는 게 급선무. 감독, 배우, 스탭이 합심해서 한 컷을 찍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는 그는 지금 몹시도 촬영현장을 그리워하는 듯 보인다. 남동철 namd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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