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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비를 멈출 것인가?
문석 2003-09-08

잦은 비로 촬영일정 크게 타격받아, 일부 장면 비닐하우스 설치해서 찍기도

충무로가 때아닌 ‘수해 복구’로 여념이 없다. 올해 6월부터 8월까지 92일 동안 전국적으로 비가 온 날은 44∼54일. 장마가 끝난 8월에도 18일 동안 비가 내린 탓에 촬영 중인 여러 편의 영화가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영화는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를 휘날리며>(사진). 2월 크랭크인해 6월까지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던 촬영은 7월 들어 10회밖에 촬영을 못했으며, 8월 들어서도 1주일에 많으면 3회, 적게는 2회 정도만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7, 8, 9월, 3개월 동안 고작 30회도 채 못 찍은 것. 이에 따라 크랭크업도 예정됐던 9월 중순에서 한달가량 밀리게 됐다. 이성훈 프로듀서는 “합천의 산간지역에서 대규모 전투장면을 찍다보니 다른 영화들처럼 세트 촬영으로 대체할 수 없고, 특수효과, 스턴트팀이나 엑스트라들이 대규모로 필요한 장면들이라 비가 오면 촬영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설명한다. 100여명의 엑스트라들이 합천 촬영장을 찾았다가 비 때문에 한컷도 못 찍고 올라간 경우만도 7번에 이른다. 정규스탭이 140명이고 무술팀과 단역까지 합치면 200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촬영을 공치다보니 숙식 등에도 상당한 비용이 추가로 들 수밖에 없다. 제작진은 비에 따른 피해만 대략 3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제작진은 일부 장면을 위해 4m짜리 비닐하우스를 급조, 그 안에 조명을 설치한 뒤 촬영을 진행했으며, 좀더 신속한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현재의 2대에서 3대로 늘리는 묘수를 낼 계획이다.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도 그동안 47회 촬영일 중 40회나 비가 내렸다. 결국 야외장면은 7번밖에 못 찍은 셈이다. 이 영화의 제작사 튜브픽처스의 황우현 대표가 “내가 알아서 비를 막겠다”고 비애 섞인 유머를 던질 정도. 그동안 스탭과 배우들이 대기하다가 비가 그치면 후닥닥 촬영을 진행하는 ‘게릴라 전법’을 써왔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을 해야 하는 탓에 9월 한달은 매일 낮과 밤에 촬영을 할 계획이다. 상당 장면이 남해에서 촬영되는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태풍 때문에 2번이나 서울로 철수하는 고생을 겪은 끝에 남해 촬영분을 마무리하고 있다. 제작진은 7명의 중년배우가 모두 주인공인 영화의 특징을 이용해왔다. 즉 비가 오면 촬영장에 잔류 중인 일부 배우가 등장하는 실내장면을 골라 촬영하는 ‘조합의 지혜’를 발휘한 것. < …ing >는 촬영지가 서울과 수도권 일대라는 이점을 이용, 해가 날 때마다 ‘비상대기 모드’ 상태인 스탭과 배우를 호출하는 기동력을 동원해 촬영기간과 비용을 조절하고 있다. 제작사인 드림맥스 관계자는 “제작진이 몸을 때워서 제작일정을 맞춰나가는 셈”이라고 말한다.

이 ‘비상시국’에도 운수 좋은 경우가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여름방학 기간 동안 촬영장인 군산의 한 고교의 교실장면을 찍었던 탓에 비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고, <안녕! 유에프오>는 야외 로케이션이 꽤 많음에도 불구하고 촬영일엔 희한하게 날이 개고, 카메라를 접으면 비가 오는 ‘천운’을 누렸다. 갈수록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촬영 전 날씨 관련 보험에 가입하는 게 일반화될지도 충무로의 관행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