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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종합선물세트 [12] - TV영화 가이드 ①
이승훈( PD) 2003-09-09

여행도 극장 나들이도 안 되면 추석기간 내내 방콕인 사람들에게 공짜로 무한제공되는 TV만큼 만만한 여흥이 또 있을까. 1년에 두번 만나는 친척들과 할말이 없어 무안한 순간을 피하는 순간 역시 TV가 만병통치약이다. 추석 기간에 볼 수 있는 볼 만한 영화들을 한데 모았다.

모정(母情)의 그늘

<육체의 고백>

6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영화를 보면 거의 예외없이 드는 생각이 낯섦이다. 처음 소개하는 조긍하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육체의 고백> 역시 그런 낯섦이 영화 전체에 깔려 있다. ‘대통령 엄마’라고 불리는 카리스마 넘치는 밤의 여왕(황정순)은 세딸을 대학까지 보내기 위해 자신의 육체를 돌보지 않고 돈을 모은다. 그런 엄마의 희망은 당연히 딸들이 돈 많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결혼하는 것이다. 그러나 큰딸은 가난한 소설가 지망생과 결혼하고, 둘째딸은 여러 남자에게 유린당하여 엄마와 비슷한 길을 걷다 죽고, 막내딸은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좋은 남자와 결혼하지만, 결국은 엄마를 부정하고 질책한다. 60년대 당시엔 비교적 흔한 얘기이면서도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다소 신파조의 멜로드라마 <육체의 고백>은 조금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더글러스 서크의 50년대 미국 멜로영화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가난한 소설가 지망생과 사랑 때문에 어머니의 뜻을 저버리고 결혼하는, 그래서 결국은 뜻을 이루고 마는(한국에서 등단하기도 전에 미국에서 영역된 소설이 먼저 호평을 받는 다소 환상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것이나, 끝내 세딸의 어머니는 그렇게 사랑하고 자신의 육체를 완전히 불사르며 모든 것을 바쳤던 딸들로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 못 듣고 권총자살을 하고 마는 설정 등은 다소 어색한 듯한 이국적 낯섦이 있다.

60년대 초·중반 영화들은 앞서 말한 낯섦 외에도 뭐라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당시 영화들만이 지닌 묘한 힘이 있다. 특히 흑백영화들이 더욱 그러하다. 이 영화 역시 그런 힘이 느껴진다. 예를 들면 달리, 아크, 경사앵글 등을 유효적절하게 사용하며 긴장감을 자아내는, 그래서 탄탄한 스토리 전개에 한층 더해 극의 힘을 배가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움직임이 많은 유려한 카메라워크 외에도 잦은 공간이동과 플래시백 등을 통해 영화를 박력있게 이끌어가는 힘이 있다.

마지막 한 가지, 이 영화에서 절대 잊지 못할 것은 기구한 운명의 둘째딸 김혜정의 과감하고 자신감 있는 연기이다. 김혜정만이 지닌 매력이 한껏 발산되는 영화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한국의 숨은 컬트영화

<소나기>

“당신은 조약돌을 주물러본 버릇이 있습니까? / 당신도 비단조개를 주워본 추억이 있습니까? / 여러분의 최초 연인은 누구입니까?”

고영남 감독의 영화 <소나기>가 개봉되었을 당시의 영화 광고문구이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그 어린 시절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했던 잔잔하면서도 예쁜 사랑을 그린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는 소설만큼이나 영화도 마니아들에게는 잔잔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윤초시네 증손녀와 주인공 석이가 만나고, 소나기를 맞으며 애틋한 사랑을 느끼는 과정을 고영남 감독의 영화 <소나기>는 소설처럼 잔잔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조윤숙의 청초하고 순수한 모습은 지금도 많은 팬을 거느릴 만큼 매력적이다. 아마도 이 영화가 일종의 컬트 현상을 나타내며 아직도 수많은 관객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어린 시절 원작을 읽으며 느꼈던 그 애틋함과 그 순수했던 어린 날의 감정을 현실로 실현시켜준 윤초시네 증손녀 조윤숙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소나기 내리는 원두막과 시골 들녘을 배경을 한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소년과 소녀가 이성에 눈뜨는 과정과 순수한 사랑을 주인공들만큼이나 풋풋한 영상으로 담아낸 고영남 감독의 노력은 가히 대단했다. 고영남 감독은 이 영화 촬영 때 한번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뒤 감독 자신의 연출의도가 잘 나타나지 않아, 직접 필름을 불태우고 다시 촬영을 했을 정도로(촬영감독에게 미안했다고 전하긴 했지만) 이 영화의 영상미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결국 영화 <소나기>는 원작의 이미지를 충실히 재현해낸 탁월한 영상미와 원작 속 주인공처럼 풋풋하고 순수한 어린 아역배우들의 캐스팅과 혼신의 연기 덕분에 <소나기>의 순수를 간직한 세대들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컬트가 되었다.

내게 키스한 게 왕자가 아니라 괴물?

<슈렉>

애니메이션의 역사상 획기적이며 신선한 발상의 영화. “옛날 옛적 어느 나라에 어여쁜 공주가 살았습니다”로 시작하는 동화의 패턴을 그대로 따르는 듯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그리고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경쾌하게 무장한 판타지라고 할 만하다. 애니메이션 <슈렉>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나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처럼 동화가 걸치고 있던 거추장스런 환상의 나래를 기꺼이 벗어버렸다. <슈렉>이 던지는 반전은 여느 동화들보다 통쾌하고, 환상을 비트는 구석이 있어 홀가분하다.

<슈렉>은 성 꼭대기에 갇힌 공주가 자신을 마법에서 풀어줄 진실하고 용감한 기사를 기다린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뜻밖에도 불을 뿜는 용으로부터 공주를 구하는 것은 성 밖의 늪지대에 사는 못생기고 힘센 괴물 슈렉. 그는 자신의 안식처로 동화 속 주인공들이 몰려오는 통에 그들을 쫓아내기 위해 파콰드 영주 대신 공주를 구하러 나서게 된다. 첫 번째 클라이맥스인 불 뿜는 익룡과의 결투장면은 어지간한 액션어드벤처영화를 능가하는 스릴을 선사한다. 그럼에도 <슈렉>의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 ‘슈렉’ 캐릭터이다. 진흙으로 샤워하고, 연못에 방귀를 뀌어 물고기들을 질식시킬 정도로 지저분하고(?) 못생긴 그이지만 피오나 공주에게 갖는 아름답고 수줍은 감정, 괴물이라는 편견 때문에 세상과 관계를 끊고 살아온 그의 인간적 외로움은 슈렉을 정서적 깊이가 있는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 3D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인간의 움직임을 정교하고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 4년에 걸쳐 개발된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결과 빛의 반사까지 감안한 피부와 근육의 움직임, 눈동자의 표현,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흩날리는 천의 느낌까지 자연스럽게 표현했다는 평을 얻었다. 발차기를 날리는 피오나 공주처럼 이 영화의 상상력은 난데없다. 거미줄 솜사탕, 두꺼비 풍선까지 상상력이 그야말로 엽기적이면서 거침없다. 액션어드벤처에서 서정적 로맨스까지 여러 장르를 종횡무진 날아다니는 <슈렉>은, 판타지를 깨부수는 또 하나의 판타지다.

<화양연화>

같은 아파트에 두 부부가 동시에 이사를 온다. 리첸 부부와 차우 부부다. 리첸은 비서로 일하고 있고, 차우는 지역신문에서 일한다. 리첸의 남편은 출장이 잦고 차우의 아내는 자주 집을 비운다. 외로웠던 리첸과 차우는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놀라운 사실과 대면한다.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관계였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리첸을 위로하면서 차우는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다. 양조위, 장만옥의 연기가 빛나는 작품이다.

<여인의 음모>

미래의 도시, 샘은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간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샘은 중세의 기사가 되고 환상의 여인을 만나는 꿈에서만 자유롭다. 그러던 어느 날 샘에게 놀라운 일이 생긴다. 꿈속의 여인을 직접 만난 것. 그녀는 트럭운전을 하고 있으며 정부에 반대한다. 그 자리에서 샘은 사랑을 고백하지만 미치광이 취급을 받는다. 원제 <브라질>로 알려진 테리 길리엄 감독의 대표작. 1980년대 SF영화의 걸작 중 한편이다.

<반지의 제왕>

악의 군주 사우론은 우주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힘을 가진 반지들을 지배할 ‘절대반지’를 만든다. 그러나 전쟁 도중 반지는 사라지고 반지는 호빗족인 빌보에게, 다시 그의 조카인 프로도의 손으로 향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우론은 절대반지를 빼앗으려고 한다. 마법사 간달프는 절대반지가 사우론의 손에 들어가면 악의 세력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일한 방법은 절대반지를 파괴하는 것. 반지원정대가 험난한 여정에 오른다.

<소림축구>

씽씽은 사부가 죽자 만두가게 처녀 아매를 흠모하는 가난한 백수로 전락한다. 우연히 씽씽의 특별한 다리 힘을 발견한 명봉은 축구단 결성을 제안한다. 일단은 정예멤버를 구하는 것이 급하다. 씽씽은 소림사 무예 동료이자 친형제들을 찾아나서지만 그들은 모두 패배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소림축구단은 프로팀을 제압할 정도의 팀으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명봉과 라이벌이었던 강웅이 비겁한 일을 벌인다. 근래 보기 힘든 호쾌한 코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