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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종합선물세트 [5] - DVD 인기 TV시리즈 4편

회식 때문에 <내 인생의 콩깍지> 마지막회를 놓친 사람, 케이블TV에서 <순풍 산부인과> 재방송을 매번 보는데도 뭔가 2% 부족한 사람, <네 멋대로 해라> 방영이 끝난 뒤 방송대본 다운받기를 해서 하염없이 읽고 있는 사람… 열광했던 TV드라마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 멋대로’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처방전. 인기 드라마들이 속속 DVD로 제작, 출시되고 있다. 쿨하디 쿨한 복수씨도 볼 수 있고, 미달이 봉변당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추석 때 온 집안식구들과 화투 대신 DVD 앞에 둘러앉는 건 어떨까?

TV에선 삭제되었던 164분의 감동

<네 멋대로 해라> 감독판(8disc)

“한번의 꿈만으로 모든 걸 뒤엎을 순 없어~ 그래도 난 꿈을 꿔~.”(<네 멋대로 해라> 삽입곡 <꿈꾸는 나비> 중에서) 얼핏 <다모>의 장성백처럼 한번의 혁명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의 노래인 것도 같다. 하지만 <네 멋대로 해라>의 전경이 속한 ‘미완성밴드’의 나른한 멜로디와 어우러지면 느낌은 달라진다. 거창한 꿈도 없이 내키는 대로 살아가지만 삶이, 사랑이, 그 자체가 희망이 되고 꿈이 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감성이 듬뿍 묻어난다.

<네 멋대로 해라>는 사실 줄거리만 보면 그닥 별다를 것이 없다. 소매치기 전과자인 복수가 우연히 가정환경이 복잡한 인디밴드의 키보디스트 전경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 원래 애인이었던 미래와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뇌종양으로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으면서 살기 위해 혹은 죽기 위해 몸부림친다는 내용이다. 자칫 진부할 수도 있는 이 드라마가 ‘앞으로 당분간 이만한 드라마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마니아를 양산해낸 힘은 바로 인물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있다.

복수, 전경, 미래, 세 주인공은 드라마의 법칙에 익숙한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바에 부응하지 않는 독특한 캐릭터다. 그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을 내뱉고, 행동하고, 상황을 만들어낸다. 아무리 심각한 상황에서라도 ‘쿨하게’ 대처한다. 아무 의미없는 듯 툭 던지는 말에 유머가 실려 있기도 하고 슬픔이 묻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솔직하다. 틀에 갇혀 있지도 않고 꾸밈도 없다. 그렇게 거칠지만 순수하게 제멋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젊은 세대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기에 많은 이들이 그들의 삶에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열광했던 것일 게다. 그리고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준 세 배우와 어느 누구도 빠짐없이 빛이 났던 조연들 또한 <네 멋대로 해라>의 보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DVD 또한 드라마의 명성에 버금가는 면모를 갖추고 있다. ‘감독판’답게 잘라냈던 장면을 추가하는 등 총 217곳을 수정, 재편집하여 방영된 분량보다 164분이 늘어났기 때문에 더욱 풍부한 감동을 전해준다. 또한 NG모음, 베스트신, 메이킹 필름, 스턴트 모음 등 서플도 충실히 갖추고 있으며 특히 촬영장소를 여행하듯 소개하는 촬영지 로케이션은 <네 멋대로 해라> 팬들에게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다.

시청률 상위 45개의 에피소드를 모았다!

<순풍 산부인과> 베스트 모음 vol.1(6disc)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된 <순풍 산부인과>의 에피소드 중 200회까지의 방영분에서 시청률 상위 45개의 에피소드만을 모았다. <순풍 산부인과>의 초기 모습 중에서도 엑기스만을 뽑아 볼 수 있는 추억의 선물인 셈.

김병욱 PD의 후속작인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와 <똑바로 살아라>가 대를 이어가며 캐릭터코미디의 힘을 증명하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순풍 산부인과>를 제일로 꼽는다. 요란벅적하기만 했던 이전의 시트콤과 확연히 차별되는 웃음의 묘미를 느낀 ‘첫 경험’이었기 때문일까. 김창완씨의 경쾌한 목소리로 “엘리베이터에 나비넥타이 낀 사연~ 그건 말로 못해~” 하며 흘러나오는 흥겨운 주제곡처럼 <순풍 산부인과>에는 ‘말 못할’ 재미있는 사연들이 가득하지만 정작 웃음의 원천은 캐릭터의 힘이다.

오씨 일가부터 병원 사람들, 심지어 잠깐 스쳐가는 단역이나 카메오까지 모든 출연진은 각자 캐릭터가 형성되기까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족들에게 큰소리로 호통을 치기 일쑤지만 칭찬이라면 사족을 못 써서 계략에 항상 당하는 오지명, 우아하게 살고 싶은 소심한 푼수 선우용녀, 맏이로서의 책임감도 있지만 친정에 얹혀 사는 것이 못내 서러운 오미선, 지독한 구두쇠 빈대에 능력도 없고 비겁한 박영규, 공주병에 도도하지만 약간은 맹한 오혜교, 머리는 나쁘지만 먹을 것에 대해서만큼 누구보다 비상한 코를 지닌 박미달. 병원 식구들도 보자. 쌍절곤을 능수능란하게 쓰고 남자 같은 성격의 김 간호사, 반대로 소심하고 여린 표 간호사, 엉뚱하고 집착이 강한 허 간호사, 여기에 가끔은 단란하고 가끔은 온갖 사건의 본거지인 찬우, 오중, 의찬 가족까지. 각 캐릭터의 역사는 초기 몇 가지의 사건과 일상의 소소한 묘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깊이 각인된다. 그리고 이후에는 언뜻 보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은 대사 하나, 행동 하나가 캐릭터의 성격과 연결되어 웃음을 자아낸다. 이것이 바로 <순풍 산부인과>가 전하는 친근한 웃음의 비결이다.

에피소드마다 NG장면을 함께 수록한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서플이 없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유머부터 해학과 감동까지 전해주는 <순풍 산부인과>를 다시 보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콩깍지를 낳은 사건들

<내 인생의 콩깍지> 박스세트(8disc)

대학 시절 만난 남녀가 10년에 걸쳐 아옹다옹 사랑을 쌓아가는 과정을 그린 로맨틱코미디 드라마. <내 인생의 콩깍지>라는 제목만 보면 두 주인공이 긴 세월을 에둘러 결국 서로가 자신의 콩깍지임을 알아보는 뻔한 이야기일 것만 같다. 하지만 드라마는 진부한 소재를 재치있게 풀어나간다. 첫 만남에서부터 은영에게 반한 경수는 적극적으로 구애하지만 경수가 눈에 차지 않는 은영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쯤 되면 경수의 일방적인 감정으로 10년 우정이 지속되다 결국 사랑으로 골인하겠군, 하는 예상도 가능하다. 하지만 웬걸, 은영이 여의치 않자 경수는 금세 돌아선다. 그리고는 미묘한 사랑의 줄다리기를 할 것만 같았던 둘은 아무 상관없는 남남인 양 제각기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30대가 되어 서로를 알아보기 전까지 은영과 경수는 여러 사랑을 겪는다. 철저하게 주인공 중심인 드라마의 특성상 이 사랑들은 ‘과정’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사랑과 인생의 쓴맛을 가르쳐주는 그 과정을 통해 1990년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의 애정심리와 연애풍속도가 유쾌하게 그려진다. 대학 때 만난 선배에게 연정을 품기도 하고, 어설픈 삼각관계에 엮이기도 하고, 결혼까지 결심했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옛사랑을 못 잊었노라며 잠시 청승을 떨기도 하고. 가지각색의 사랑이 반복될 뿐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운명적인 사랑’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사랑은 일상에서 겪는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감정의 극단까지 치닫는 짜릿함이 없기에 방영 당시 시청률은 낮았지만 뮤지컬 방식을 도입하고 주인공들이 무심하게 살아온 1990년대 사건사고들을 구석구석 재연해낸 새로운 시도는 호평을 받았다. 매회 3분 정도 주인공들이 뮤지컬을 통해 자신의 심경을 고백하는 장면은 처음의 어색함을 극복하고 점차 극의 활력소가 되었다. DVD에는 총선, 성수대교 붕괴사건, 부정입학, IMF, 월드컵 등 드라마의 배경이 된 굵직한 사건들의 일지가 드라마 속 장면과 함께 수록되어 있으며 뮤지컬 장면과 수록곡도 따로 모아져 있다. 메이킹 필름, 출연자 인터뷰, 뮤직비디오 외에 연출을 맡은 한희 PD가 처음 뮤지컬 방식을 시도했던 특집극 <고무신 거꾸로 신은 이유에 대한 상상>의 감독판도 서플로 제공된다.

말리부의 일출장면을 고화질로 만난다

<올인> 박스세트(8disc)

차민수라는 실존인물의 삶을 그린 노승일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올인>은 도박사라는 새로운 소재로 기획단계부터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다. 차민수는 프로 바둑기사 출신으로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무대에서 프로 갬블러로 명성을 떨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 그의 실제 삶도 드라마틱한데다 <허준> <상도>를 집필했던 최완규 작가가 만들어낸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라인, 이병헌, 송혜교를 필두로 한 스타 캐스팅,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스펙터클까지 합세해 <올인>은 2003년 상반기 최고의 인기드라마가 되었다.

<올인> 최고의 화젯거리는 무엇보다 이병헌, 송혜교라는 톱스타의 출연이었다. 2001년 <아름다운 날들> 이후 2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 이병헌은 <올인>을 통해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그가 맡은 김인하 역은 어린 시절 고아가 되어 노름꾼 밑에서 도박판을 전전하며 자라다 우발적인 사고로 살인누명을 쓰고 미국으로 도피한 뒤 프로 갬블러로, 카지노 사업가로 성공하는 인물이다. 이병헌은 냉철한 승부사의 카리스마와 조금은 껄렁하고 불안한 청춘을 훌륭하게 조화시키며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가을동화> 이후 국내에서뿐 아니라 중국 대륙과 동남아 등지에서까지 최고의 히로인이 된 송혜교 또한 순애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활발하고 의지가 강한 수연의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 <순풍 산부인과> 시절의 발랄함과 엉뚱함도 조금씩 비쳐 보는 이들을 즐겁게 했다. 두 사람은 드라마를 통해 실제 연인으로까지 발전해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인>의 또 하나의 매력은 화려한 볼거리다. 한달 동안 미국 현지에서 촬영하고 회당 2억5천만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들인 <올인>의 장대한 스펙터클은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그랜드캐니언의 장관, 광활한 사막에서 펼쳐지는 카레이싱, 라스베이거스 호텔 카지노에서의 도박장면, 말리부 해변 대저택에서 맞이하는 일출 등은 고화질인 DVD에서 더욱 빛이 난다. 이병헌, 송혜교의 인기를 고려해 두 배우의 매력탐구, CF출연 장면 등도 수록되어 있지만 DVD를 위해 새로 제작된 출연진 인터뷰가 형식적이고 연출자와 작가의 인터뷰가 없는 등 서플은 비교적 부실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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