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추석 종합선물세트 [4] - DVD 애니메이션 박스 세트 ②

마니아풍이 강한 또 하나의 작품으로, 최근에 모습을 드러낸 <나의 지구를 지켜줘> 박스 세트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은 국내에 라이선스판으로 발매되었던 출판만화 <내 사랑 앨리스>를 원작으로 하는 6부작 애니메이션이다. SF, 멜로, 판타지, 친환경 등의 여러 가지 테마가 치밀한 서사구조를 돕고, 순정만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스케일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게다가 원작만화가 연재 중에 완성된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징 때문에, 원작의 엔딩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독자적인 완결구도를 가지고 있는 점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물론 원작만화에 비해 하드보일드한 면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지만 방대한 분량의 원작만화에서 핵심인물의 감정만을 강하게 부각시킨 점과 애니메이션으로서의 높은 완성도 때문에 팬이 아닌 사람들이 보면 별다른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균형잡힌 음감을 감상할 수 있는 사운드가 이 타이틀의 또 하나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섬세한 울림으로 전달되는 여주인공 모쿠렌의 매력적인 아리아와 몽환적인 분위기의 수록곡들은 여운이 오래 남는다. 서플먼트 디스크에 수록되어 있는 8개의 ‘Music Image Video’ 코너는 그러한 사운드의 장점과 함께 새롭게 그려진 작화들을 감상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마지막으로 더없이 난해한 스토리의 전개 방식으로 인해 ‘보는 이의 취향에 따라 극단적인 평가가 나올 수 있다’고 미리 강조해둬야 하는 애니메이션,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그림)를 추천할까 한다. 이 작품은 염세적인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있고, 스토리의 전개방식은 거의 에 가까우며, 작화 스타일은 일부러 어둡고 뿌옇고 노이즈가 극에 달한 듯한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만큼 독특한 매력을 품고 있어, 일부 마니아들의 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울 때, 죽음으로 이끌어가는 사신’으로 불리는 부기팝 캐릭터가 전면을 응시하는 이미지의 박스디자인은 작품의 성격을 극단적으로 노출시켜주는 장치다.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정체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은 일본에서 열린 제4회 전격게임소설의 대상 수상작. 물론 소설을 읽지 않아도 애니메이션을 즐기기에는 그다지 무리가 없지만, 총 12회의 에피소드 속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기괴한 사건들의 연결구조는 소설을 읽고 싶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다행히 소설까지 찾아보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등장인물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Character Introduction’ 코너가 서플먼트에 수록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궁금증을 모두 해소하기에는 역시 조금 부족하다.

색다른 웃음을 원한다면

<아즈망가 대왕> <후르츠 바스켓>

연휴 기간을 마음껏 웃으며 지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애니메이션 박스 세트는 바로 <아즈망가 대왕>과 <후르츠 바스켓>이다. 모두 캐릭터들의 외향만 보면 전형적인 학원 미소녀 만화로 오해받기 십상이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독특하고 코믹한 설정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그중 최근에 DVD 6장이 완결된 <아즈망가 대왕>은 뜬금없는 개그식 유머가 포인트인 만화다. <아즈망가 대왕>의 이런 특징은 놀랍게도 원작이 4컷만화라는 특징에서 나온다. 본편 애니메이션을 보다보면 어딘가 모르게 납작한 평면형 캐릭터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거나, 캐릭터의 동작이나 에피소드의 흐름 어딘가에서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엉뚱하고 썰렁한 흐름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색다른 박자의 유머를 창출해내고 보는 이들을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런 독특한 유머는 유쾌/상쾌/경쾌함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하얀색 바탕에 학년별로 오렌지색, 하늘색, 연두색 띠를 두르고 귀여운 캐릭터들이 말풍선 모양으로 “아즈망가 대왕!”을 사정없이 외치는 케이스디자인에서부터 그 느낌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주인공 중 하나인 ‘부산댁’의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현한 한국어 더빙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더빙에 맞추어 사투리용 한글자막이 따로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주 색다른 부분. 또한 더빙을 담당한 한국 성우들과의 인터뷰 서플먼트도 담겨져 있어, 더빙이 얼마나 중요한 과정인가를 흥미롭게 볼 수 있다. 물론 가끔 인터레이스드 현상이 눈에 띄긴 하지만 디지털로 색작업을 마친 깔끔한 화질과 이른바 ‘아이캐치’ 장면들 그리고 글자를 삽입하지 않고 이미지만 부각시킨 ‘Non-credit Opening/Ending’ 서플먼트 등의 색다른 시도도 시종일관 유쾌/상쾌/경쾌한 이 박스 세트의 이미지를 잘 받쳐주고 있다고 하겠다.

4컷만화를 원작으로 한 <아즈망가 대왕>은 엇박으로 진행되는 뜬금없는 유머가 포인트. 게다가 등장인물 중 '부산댁'의 사투리를 오나벽하게 구현한 한국어 더빙도 즐거움을 더한다.

한편 9개의 타이틀 케이스가 소풍용 도시락 가방 속에 샌드위치처럼 가지런히 들어앉아 있는 <후르츠 바스켓> 박스 세트도 마음껏 웃고 싶은 이들에게 최적의 선택이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희망을 잃기는커녕 “천천히 해나가면 돼”라는 캔디형 대사를 읊는 천사표 여주인공과 그녀를 둘러싼 십수명의 미소년 캐릭터들이 겉으로 보여지는 <후르츠 바스켓>의 모습. 그러나 <후르츠 바스켓>은 그런 뻔해 보이는 설정에 허를 찌르는 묘미가 숨어 있다. 바로 미소년 캐릭터들의 몸에 12지신의 혼령에 씌워져 있어 체력이 떨어지거나 이성이 껴안으면 해당하는 동물로 변해버리는 것. 전형적인 미소녀 만화에, 변신을 거듭하는 코믹물 <란마1/2>의 혼성교배를 떠올린다면 얼추 비슷하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변신하는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캐릭터들의 고뇌에서 감동까지 느껴지는 것이 이 애니메이션의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본편과 함께 이 박스 세트는 상당히 풍부한 서플먼트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총 26화가 수록되어 있는 9개의 디스크마다 서플먼트가 한 가지씩 들어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일본 특유의 만담식 전개로 지루함을 없앤 일본 성우들과의 1대1 대담과 한국 성우들과의 인터뷰는 캐릭터에 대한 성우들의 애정 어린 시선과 냉철한 분석을 대리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측면에서 특별하다. 추석과는 조금 어긋나지만 12지신의 설화가 나름대로 명절 분위기에 어울린다는 면에서 더욱 추천하고 싶은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