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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신작,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1]
권은주 2003-09-19

시간을 넘어, 자해의 미학을 넘어

김기덕 신작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글 남동철 namdong@hani.co.kr

대부분의 관객에게 김기덕의 영화는 두렵다. 강간과 자해와 살인의 그 끔찍한 형상은 그의 영화에 대한 호오를 극단적으로 갈리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김기덕의 9번째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김기덕의 변화’에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 영화에는 관객을 경악하게 할 만한 잔혹한 이미지가 없다. 언 고등어와 낚싯바늘과 유릿조각이 생살을 파고들 때 들리던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잦아진 자리, 그곳에 300년 된 왕버드나무를 품에 안은 그림 같은 호수가 있고 그 호수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있었을 것 같은 작은 암자가 있다. 신선이 노닐 듯한 풍경, 김기덕 감독은 혹시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도착한 것은 아닐까? <봄 여름…>은 이 도원경의 한가운데에서 인간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물끄러미 지켜본다. 제목이 전하는 대로 계절은 인간과 더불어 나고 자라서 늙고 다시 태어난다. 과연 <봄 여름…>의 낯선 아름다움, 잔잔한 물밑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 것일까?

불교영화에 기댄 간절한 기도

<봄 여름…>은 겉보기엔 평범한 불교영화 같다. “욕망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살의를 품게 한다”는 노승의 말씀, 뱀과 개구리와 물고기 같은 미물의 생명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가르침, 스치는 인연이 운명의 굴레로 이어져 같은 자리로 영겁회귀하는 윤회사상 등 영화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불교의 진리에 무엇 하나 덧붙이지 않고 기존의 해석을 뒤집지도 않는다. 그건 김기덕 영화의 철학적 빈곤을 지적하는 이들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얄팍한 지력으로 감히 해탈을 논하다니! 화면은 아름답지만 속은 텅 빈 껍데기가 아닌가. 그러나 <봄 여름…>은 이 지점에서 불교영화가 아니라 김기덕 영화로 바뀐다. 너무나 익숙한 불경의 교리가 불현듯 관객의 감정에 물결을 일으키고 파도를 생성시킨다. <봄 여름…>은 불교영화이기 전에 김기덕 특유의 멜로드라마다. 한강 다리 아래에서, 포항의 바닷가에서, 욕망의 저수지에서, 매춘의 거리에서 한 여인을 통해 구원을 꿈꾸었던 사내가 이 영화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용서와 화해를 기도한다.

뱀과 개구리와 물고기의 몸에 돌을 매달아놓고 즐거워했던 그때, 스님은 미물에게 가한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아이의 몸에 돌을 매달아 스스로 깨닫게 했다.

<봄 여름…>의 이야기는 영화가 서술하고 있는 시간 순서처럼 ‘봄’에서 시작해서 ‘그리고 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봄 여름…>은 일단 ‘겨울’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나머지 장을 플래시백과 에필로그로 이해했을 때 이야기로서 온전해진다. 재구성해보면 <봄 여름…>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 눈 내리는 어느 날, 한 남자가 일주문으로 들어선다. 뚜벅뚜벅 걸어서 텅 빈 암자에 이른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웠던 스님이 입적했음을 깨닫는다. 한 마리 뱀이 돌아가신 스님의 옷을 지키고 있다. 그에겐 이제 수행의 시기가 왔다. 지난날 사랑하는 여인의 변심을 참지 못해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갔다온 남자, 그는 아직 죄의식을 떨쳐낼 수 없다. 법과 제도는 그를 석방시켰지만 그가 마음의 감옥에서도 해방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보자기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아이를 안고 이 암자를 찾아온다. 불상 앞에서 그녀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채 흐느껴 운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남자는 그녀에게서 사랑했지만 죽음으로 내몰았던 연인의 이미지를 본다. 깊은 밤, 여인은 아이를 두고 절을 나와 도망친다. 그러나 얼어붙은 호수 한가운데에 살얼음이 껴 있다. 여자는 그 속에 빠지고 남자는 아침이 되어서야 시신을 발견한다. 그는 다시 자기 앞에 모습을 드러낸 욕망과 살인의 흔적을 어떻게 떨쳐낼 수 있을 것인가? 남자가 허리에 맷돌을 멘 채 불상을 들고 산으로 향하는 순간, 어린 시절 스님의 가르침이 겹쳐진다. 뱀과 개구리와 물고기의 몸에 돌을 매달아놓고 즐거워했던 그때, 스님은 미물에게 가한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아이의 몸에 돌을 매달아 스스로 깨닫게 했다. 육체의 고통으로 나의 죄를 대신할 수 있다면, 기어이 저 높은 산꼭대기까지 올라가고 말겠다. 남자는 간곡한 소망을 담아 힘겨운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딘다.

멜로드라마의 틀 안에서 죄의식과 싸우다

<봄 여름…>에 ‘깨달음’이 있다면 그것은 불경에서 빌려온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속죄의식에 들어 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의 지적대로 김기덕은 죄의식과 싸우는 감독이며 그 싸움의 방식은 뒤틀린 멜로드라마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 <정선아리랑>이 흘러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쁜 남자>의 마지막 장면에 흘러나온 복음성가처럼 <정선아리랑>은 <봄 여름…>이 지시하는 대상을 정확히 가리킨다. <나쁜 남자>를 종교적 영화로 만들었던 것과 정반대로 김기덕은 종교적 영화 <봄 여름…>을 원망과 이별의 정한을 담은 영화로 만들었다. <봄 여름…>의 각장에서 무언가가 사라지거나 떠나거나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왜 개구리와 물고기와 뱀, 강아지와 닭과 고양이와 거북이가 저마다 열연을 하는가? 그것은 개별 동물이 상징적 의미를 갖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있다가 없어진 자리, 그 작은 공허와 허무가 인간의 역사와 공명하며 헤어짐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봄’에 나왔던 동자승의 울음이 ‘겨울’에서 갑자기 거대한 무게를 갖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봄 여름‥ >에서 다루는 김기덕의 방식은 '반복'과 '이별' 이다. 죽음 또는 헤어짐은 결코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눈에 보이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봄 여름…>에서 김기덕이 사계의 변화로 시간의 흐름을 그리고 있다는 진술은 절반만 맞는 얘기다. 그건 이 영화의 제목이 <봄 여름…>이라고 되풀이 말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수취인불명>에서 시간을 다루는 김기덕의 방식이 ‘반복’이었다면 <봄 여름…>에서 그것은 ‘반복’과 ‘이별’이다. 제목에 들어 있는 ‘그리고 봄’처럼 이 영화가 반복을 통해 윤회에 다가선 것은 <수취인불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취인불명>에서 그는 은옥과 창국의 어머니, 개눈과 지흠을 겹쳐 그 속에 시간을 포개넣었다. 반복되는 캐릭터로 불화의 시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느낌을 만든 것이다. <봄 여름…>에서도 이런 방식은 유효하다. 극단적으로 말해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결국 한 사람이다. ‘겨울’ 에피소드의 남자는 소년이었고 살인자였고 노승인 것이다(얼굴을 가린 여인 또한 반복이다). 하지만 <봄 여름…>은 <수취인불명>과 달리 악업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화는 아니다. <봄 여름…>에는 반복 외에 다른 방식이 필요했고 김기덕은 그것을 ‘이별’에서 찾는다. <봄 여름…>에서 죽음 또는 헤어짐은 결코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눈에 보이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낸다. 시간이 눈앞에 정체를 드러낼 때 시간은 자신의 본질을 숨길 수 없다. 이별이 그렇듯 시간도 슬픔을 머금은 존재다. <봄 여름…>이 슬픈 영화라면 그래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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