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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엔딩을 찾습니다
김혜리 2003-09-22

단조로워진 할리우드 엔딩, 감독보다 시사회 관객 반응 우선시한 결정이 큰 원인

<버라이어티>가 영화를 마무리하는 할리우드의 솜씨가 볼품없어졌음을 개탄하는 기사를 실었다. “<뜨거운 것이 좋아> <대부> <차이나타운> 같은 걸작의 마지막 장면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지만 <헐크>나 <툼레이더2: 판도라의 상자>를 기억할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라는 물음으로 서두를 뗀 이 기사는 최근 할리우드영화의 맥빠진 엔딩을 초래한 요인을 분석했다.

드림웍스의 마케팅 책임자 테리 프레스는 영화의 대단원에서 속편을 넌지시 예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원흉’으로 지목한다. 최후의 의미심장한 대사나 대담한 반전을 시도하는 대신, 속편에서 살아남을 캐릭터를 가려내고 모든 것을 영점으로 돌려 새로운 에피소드의 발판을 다지는 데 집중하는 엔딩이 많아졌다는 것. 거대 예산의 프랜차이즈영화가 할리우드의 주력이 되면서 영화의 결말을 속편의 티저 광고로 짭짤하게 이용해야 한다는 욕심이 널리 퍼진 탓이다.

하지만 ‘할리우드 엔딩’이 빈약하고 단조로워지는 좀더 근본적인 원인은, 감독과 작가의 예술적 비전보다 테스트 시사회 관객의 다수결이나 시장조사 회사의 컨설팅이 더 큰 발언권을 갖는 스튜디오의 의사결정 구조에 있다고 <버라이어티>는 지적했다. 테스트 시사로 스토리가 뒤집힌 영화의 대표격으로 널리 거론돼온 영화는 1987년작 <위험한 정사>. 글렌 클로즈가 분한 캐릭터가 마이클 더글러스의 가정을 위협하다 자살하는 것이 본래 결말이었던 이 영화는 시사회 관객의 ‘여망’에 따라 더글러스의 부인이 미쳐 날뛰는 클로스를 칼로 찔러 죽이는 것으로 엔딩을 바꿨다. 그러나 이같은 사례는 어느새 할리우드의 표준적 관행이 됐다. <버라이어티>에 의하면 엔딩에 대한 할리우드의 비공식적인 모토는 “속편을 위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핵심 관객층 가운데 누구도 소외시키지 말라”다. 또한 지나치게 뭔가를 주장하는 결말도 기피대상이다. <버라이어티>는, 공포영화 <데스티네이션>의 시나리오상 결말이 마지막 생존자가 친구들의 무덤을 방문하는 장면이었지만, “요즘 10대 관객에게 너무 무겁다”는 제작사 뉴라인의 판단에 따라 테스트 시사 관객의 미움을 한몸에 산 캐릭터가 날아든 간판에 맞아죽는 엔딩으로 바뀐 사례를 들었다.

무기력한 엔딩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시나리오 작법의 획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존 부어맨 감독은 영화 <어댑테이션>에서 상업적 영화의 각본 공식을 설파하는 인물로 나온 저명한 시나리오 작법 교수 로버트 매키 같은 인물이 한 세대의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을 세뇌시켜 여운이 남는 엔딩을 멸종시켰다는 견해를 <버라이어티>에 밝히기도 했다. “캐릭터의 소개, 갈등의 명시, 내러티브의 전개, 3막 구성 등의 정해진 공식이 모든 영화를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었고, 관객이 정해진 패턴에 길들여지도록 부채질했다”는 것이 부어맨의 비판이다.

그렇다면 <버라이어티>가 정의한 바람직한 엔딩은? “불이 켜진 뒤 관객으로 하여금 화장실에서 논란을 벌이게 하는 엔딩, <디 아더스>나 <아메리칸 뷰티>처럼 영화 전체를 다시 곱씹고 모든 것을 새로운 앵글로 보게 만드는 결말”이다.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