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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신상옥-배우 최은희,`안양신필림예술센터` 재건
사진 정진환박혜명 2003-10-01

이론보다 경험을, 그보다는 연기 혼을!

물리적으로 많은 나이가 인간의 활동을 상당 부분 제한한다는 것은 강력한 편견이다. 그러나 또 종종 깨진다. 이 편견의 근거없는 힘은 지난 9월18일 오후 신상옥-최은희 부부를 대하는 순간 더욱 무력해졌다. 안양신필림예술센터 학생들의 뮤지컬 <미스 마마> 공연을 앞둔 안양문예회관 2층 로비. 분주히 손님들을 맞고 있던 두 사람에게서 어느 누구라도 그 얼굴에 띤 홍조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신 감독 내외는 25년 만에 학교를 다시 세우고, 기본기 닦기에 한창인 학생들을 가르쳐 3개월 만에 무대 위로 올린 참이다. 여전히 창작의 열정이 스며나오는 노 감독과 배우 부부, 그리고 그 제자들의 뮤지컬 공연. 얼핏 기묘해 보이는 이 삼박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시간을 조금 거슬러올라갈 필요가 있다.

사재 20억원 털어 학교 근간 재건

안양예고와 계원예고가 자리한 경기도 안양시는, 1967년 세워졌던 ‘신필림부설안양예술학교’를 기억하고 있다. 이 학교는 신상옥 감독의 영화제작사 신필림이 스튜디오 내에 연기실을 만들면서 시작된 배우양성기관. 신필림은 당시 연간 30편의 영화를 제작해낼 만큼 규모와 위상 면에서 국내 최고를 자랑하던 영화제작사였다. 왕성한 영화 제작편수를 배우 수가 받쳐주지 못하자 신 감독이 ‘자급자족’ 시스템을 고안해낸 셈이다. 1978년 신 감독 내외가 연이어 북으로 가게 되면서 주인을 잃은 이 학교는 안양예술고등학교로 바뀌게 된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해 안양시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설립자인 신 감독 내외와 한국 영화사에 굵직한 획을 남긴 영화제작사 신필림이다. 신 감독 내외도 그들이 세웠던 학교를 잊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학교를 세워 연기자를 양성하겠다는 열정은 세월의 입김에도 식지 않았다. 이 마음이 예술도시의 위상 회복을 꿈꾸던 안양시의 바람과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초 안양시가 주최한 신상옥 감독 작품 회고전은 이유없는 행사가 아니었다. 회고전을 개최하면서 안양시장은 신 감독 내외에게 안양시 내 예술학교 건립을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올해 3월, 안양시로부터 임대받은 경찰서 부지 위에 안양신필림예술센터가 문을 열었다.

애초 의도는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센터’로 이름 붙은 까닭은, 학교 인가를 받지 못해서다. 사립학교의 부지가 설립자 소유가 아닐 경우 학교 인가는 나지 않는다. 학교 건립을 먼저 제안했으나 재정이 넉넉지 않은 안양시로선 부지 임대가 최대한의 협조였다. 신 감독 내외는 사재 20억원을 들여 기존 건물을 개조 및 수리, 증축해 현재의 센터를 완성했다. 3천평의 대지 위에는 강의실과 스튜디오, 영화를 상영하는 소극장 등이 꼼꼼하게 들어앉아 있고, 감독과, 연기과, 작편곡과, 가수과 등 4개 학과 안에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160명가량의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신상옥 감독은 이사장의 타이틀을 달았고, 최은희씨가 학장을 맡았다.

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혹독한 실기

사실 이런 정황만으로 신필림예술센터를 주목해야 한다고 적극 발언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이유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 영화사의 일부분을 몸에 새긴 영화인이 오래된 의지와 아낌없는 사재투자로 학교를 세웠다는 것, 여기에서 이 학교의 독특한 성격도 비롯되고 있다. 40여년 전의 안양예술학교 설립 의도도 그러했지만 신상옥 감독의 신필림예술센터는 실기와 현장 경험 위주의 교육을 가장 큰 목표로 삼는다.

지난 18일 안양문예회관에서 선보인 뮤지컬 공연 <미스 마마>는 이 목표를 실현시킨 첫 번째 결과물이다. 예술센터 학생들은 기본기 수업을 3개월만 받고 6월에 오디션을 치렀다. 캐스트가 확정된 뒤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혹독한 연습이 계속됐다. 이 과정이 정말 ‘혹독’했으리라 짐작되는 까닭은 학생들 중 상당수가 ‘하고 싶다는 의지’를 높이 평가받아 입학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교무과장 양계현씨는 “총지원자 수가 230명 정도 됐는데 간단한 면접으로 학생들을 걸러냈다. 자격에 큰 제한을 둔 건 아니었고, 신 감독님 내외는 학생들이 본인 의사로 온 건지 부모에게 떠밀려 지원한 건지를 판단했다. 자신이 희망해서 오지 않은 학생들은 안 받겠다는 뜻이었다”고 말한다. 외모나 나이, 연기력 따윈 중요한 기준이 되지 않았다. 공연 팸플릿 인사말에 담긴 최은희씨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완전한 배우는 없다. 항상 겸손하고 배우는 자세로 임하길 바란다.”

뮤지컬 <미스마마> 만들기로 수업

이론보다는 직접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당연한’ 생각은 이곳의 커리큘럼도 독특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수업은 프로젝트 중심으로 구성된다. 지난 1학기는 이번에 치른 <미스 마마> 시공연을 중심으로 수업을 꾸렸고, 현재는 11월에 있을 본공연에 맞춰 진행 중이다. “아직은 아이들 실력이 검증이 안 돼서 시공연-본공연 형태로 하고 있다”는 것이 학교쪽의 설명. 감독과와 연기과 학생들은 뮤지컬 본공연을 마친 뒤 내년 새로운 프로젝트 수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작편곡과와 가수과 학생들은 오는 12월 콘서트 시공연, 내년 상반기 본공연 일정에 맞춰 수업을 받고 있다.

안양신필림예술센터의 첫 학생공연 <미스 마마>는 과거 신필림부설안양예술학교 학생들이 출연했던 뮤지컬영화 <아이 러브 마마>의 각색작이다. 지금은 예술감독 크레딧을 달고 있는 신상옥 감독이 직접 연출했고 남궁원, 최은희씨가 주연을 맡았었다. 신 감독은, “그때 그 학교를 다녔던 서미경이, 김보연이, 김세환이가 이거 하고 나서 유명해졌지”라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공연이 있던 그날은 오후 일찍부터 비가 내렸다. 그 와중에도 찾아온 지인들을 맞으면서 신 감독 내외는 총 3회 공연 내내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2회 공연을 관람하던 신상옥 감독은, 마치 이 공연 처음 본다는 듯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연습은 물론이고 리허설과 1회 공연까지도 똑같은 것을 수없이 보았을 텐데, 그에겐 전혀 새로운 듯했다. 아마 3회 공연 때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저 표정 외에 신필림예술센터가 세워지게 된 궁극적 이유를 설명할 길은, 없는 듯하다.

“내 몸을 바치고 있다” 신상옥-최은희, 양계현씨 인터뷰

지난 9월18일 늦은 오후, <미스 마마> 2회 공연이 끝나고 안양문예회관에서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씨 내외, 그리고 신필림예술센터의 교무과장 양계현씨를 만났다. 하루 동안 3회 공연이 연달아 진행되는 일정 때문인지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분주해 보였고, 그중에서도 세 사람은 가장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인터뷰는, 신 감독 내외가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우는 짬을 통해 짤막히 진행됐다.

최은희, 신상옥

학교를 세우겠다는 뜻을 결국은 다시 실현시켰다. (최은희)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해오고 있었다. 가끔 아는 사람들이 “예전에 예술학교 하셨죠? 지금은 다시 학교 안 하세요?” 이런 질문을 물어오곤 했다. 일반 대학교에서 예술학교를 만들자는 제안도 몇번 들어왔었다. 그렇지만 막상 얘기해보니 그쪽이랑 우리랑 의견이 맞지 않아서 거절했다.

안양예술학교 때도 그렇고 지금 예술센터에서도 최은희씨가 학장 일을 맡고 있다. (최은희) 그때는 특강만 했지 요즘처럼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 영화랑 TV 출연하느라. 요즘엔 완전히 내 몸 바쳐서 신경쓰고 있다.

이번 공연이, 말하자면 신필림예술센터를 본격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기회인데 특별히 이 작품을 고른 이유는 뭔가. (신상옥) 젊은 애들 구미에 맞추려고 뮤지컬을 택했다. 원래는 사극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심청전>을 하려고 했는데 애들이 어려워할까봐 바꿨다.

공연 준비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신상옥) 2억원 가까이 들었다. 애들 등록금 1년치 모으면 3억원인데. 내년엔 TV드라마를 자체적으로 제작할 계획이다. 드라마 만들어서 방송사에 납품할 거다. 영화도 만들 계획이다. 다른 연영과에서는 무서워서 못한다. 돈이 없어지니까.

사재 20억원도 털어넣었다. 엄청난 애정이다. (신상옥) (웃음) 나이가 이렇게 드니까 다들 아들딸 같다.

양계현

학생들은 어떻게 모집했나. 크게 홍보하지는 않았는데, 신 감독님과 최은희씨가 학교를 세운다는 기사가 나가서 그걸 보고 지원해 왔다. 올해 1월 말부터 2월까지 신청을 받았다.

학생들 나이가 다양하다. 나이 제한을 안 두고 받았다. 초·중·고등학생들은 정규 학교를 다니면서 이곳에서 수업을 받고 있고, 성인반 친구들은 대학을 포기하고 온 애들이다.

커리큘럼이 특이하다. 프로젝트에 따라 수업이 편성된다. 이번 뮤지컬 공연이 끝나면 바로 드라마 제작에 들어간다. 그러면 수업도 거기에 맞춰서 진행될 것이다. 일본 드라마가 원작인데, 판권 때문에 신 감독님이 일본에 가셨다. 만들고 나면 방송사에 납품할 계획이다. 주요 배역과 스탭들은 모두 기성 배우와 전문가들이지만 우리 학교 학생들이 조연과 어시스트로 참여하게 된다. 학생으로선 직접 실습을 한다는 의미가 있고, 방송사 입장에서는 외주를 받는 셈이다.

신 감독님과 최은희씨는 학교 일에 얼마나 관여하는가. 제일 일찍 나오시고 제일 늦게 퇴근하신다. 직접 수업도 하신다. 최은희 선생님은 금요일마다 연기과 학생들 모니터링을 해주시고, 신 감독님은 금요일마다 영화 감상하고 평가하는 토론 수업을 진행하셨다. 지금은 감독과 학생들한테 프로젝트를 주셨는데 그걸 관리하고 계신다. 이번 뮤지컬 메이킹필름을 찍는 거다.

본인은 두분과 그 전부터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나. 아니다. 모 방송사 아카데미에 있다가 왔다. 거기는 정말 학원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여기는 다르다. 두분에게 배울 게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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