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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 고양이>부터 <좋은 사람>까지,새로 등장한 남자 캐릭터들
권은주 2003-10-01

귀염둥이 전성시대

못생긴 주제에 귀엽지도 않으면 죽어야 한다. 최소한 연애생명은 끝이다. 게임의 법칙이다. 아무리 개겨봤자 소용없다. 무조건 귀여워야 사랑받는다. 깜찍해야 살아남는다. 그닥 잘생기지도 않은 당신이 연애의 정글에서 강퇴당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자들은 물론이다. 남자들도 열외는 아니다. 어쩌면 남자가 더하다. <좋은 사람>의 조한선(태평)을 보라. <옥탑방 고양이>의 김래원(경민)을 잊었는가. <별을 쏘다>의 조인성(성태)은 또 얼마나 깜찍했던가. 아∼ 이 드라마들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연애 황금기,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이 그 푼수들의 깜찍함에 자지러지고, 양아치들의 성공담에 심금을 울렸던가. 깨물어주고 싶어 안달이었던가.

이토록 훌륭한 모델을 동원해서 그토록 다양한 ‘교본’들을 날마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아직도 조한선 따라잡기, 김래원 흉내내기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남성 칠거지악’에 해당되는 중죄인이다. 당신이 못생긴 여자는 용서해도 뚱뚱한 건 용서 못한다고 여자친구를 협박하는 동안 당신의 여자친구는 못생긴 남자는 용서해도 뻣뻣한 놈은 용서 못한다는 신념을 굳혀가고 있다. 왜냐고? 귀여운 건 노력하면 되니까. 지금 드라마에서 벌이고 있는 ‘귀여운 남자’ 캠페인의 교훈은 바로 그것이 아닌가. 귀엽지 않은 당신, 떠나라. 아니면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개인기를 연마하고, 깜찍한 표정을 연습하라. 불철주야 텔레비전을 보면서.

당신은 이의를 달아서는 안 된다. 조인성, 김래원, 조한선은 얼굴부터 먹어준다고? 아니다. 당신이 드라마를 보지 않은 탓이다. 조, 김, 조 트리오는 2% 부족한 미남으로 ‘설정’된다. 물론 2% 부족한 미모는 귀여움으로 보충돼 100% 남성으로 완성된다. 맞다. 그 설정이 문제다. 굉장히 멋있으면서 뭔가 모자란 것으로 설정되는 것. 그래서 안 생긴 당신도 ‘하면 된다’는 이데올로기가 유포된다. 드라마를 본 당신의 여자친구는 말한다. “못생겼으면 귀엽기라도 해야 될 거 아냐.” 그래서 가끔 그들이 깜찍할수록 나는 끔찍하다.

그런데 조, 김, 조 트리오는 너도 알고, 나도 알다시피 흠잡을 데 없는 미남이다. 깎은 듯이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척 잘생겼다. 그런데도 방송사는 “안 예쁘다”고 우긴다. 신문들은 입을 모아 “귀여운 남자가 뜬다, 안 예쁜 데도 뜬다”고 입에 발린 칭찬을 일삼는다.

이즈음이면 귀여우면 성공한다, 는 신화까지 가세한다. 까막눈인 풋내기 연기자(조인성)는 정상급 배우로 일떠서고, 등쳐먹는 고시생(김래원)은 검사님으로 발딱 서고, 근본없는 양아치(조한선)는 마침내 뼈대있는 민주 경찰로 환골탈태한다. 귀여움이라는 필살의 무기로 일신우일신, 일취월장하여 각고의 노력없이 마침내 성공신화가 탄생한다. 물론 잘생긴 바보온달 곁에는 저고리 고름 입에 문 ‘차칸’ 평강공주가 있다(아마 이 평강공주들은 틀림없이 드라마 작가 언니들의 환생일 터이다). <좋은 사람>의 소유진, <옥탑방 고양이>의 정다빈 역시 2% 부족한 미인들이다. 심지어 기자 오빠들한테 “평범한 얼굴”이라는 심한 말까지 듣는다. 그러나 방송 못 타는 필부필녀들에 비하면 무지하게 예쁜 얼굴이다. 안 예쁘다는 말 앞에는 “김희선에 비해서, 장동건과 비교하자면”이라는 말이 생략돼 있는 것이다. 물론 평강공주들도 전가의 보도, 귀여움으로 2%의 갈증을 채운다. 사실 그 얼굴에 뭔 짓을 한들 안 귀엽겠는가. 게다가 물심양면으로 바보온달을 성공시키고야 마는 구원의 여성상이 아닌가. 작금의 강호의 도는 남녀불문하고 귀천 따지지 않고 귀여워야 사랑받는다, 는 명제로 정리된다.

바야흐로 백마 탄 왕자님들의 시대는 ‘거’했다. <옥탑방 고양이>의 이현우는 헛물만 켜다 채였고, <좋은 사람>의 신하균은 숨겨진 거짓말이 탄로나 나쁜 사람으로 몰릴 신세다. 단 한번의 윙크로 뭇 여성들을 녹이던 왕자님들은 이제 바보온달의 성공담을 빛내주는 고정 조연으로 연명하고 있다. 무릇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다운 법. 이제 백마 탄 왕자님들은 백마 타고 떠나야 한다. <사랑을 그대 품 안에>의 차인표, <토마토>의 김석훈 같은 고위층 왕자님들은 서서히 몰락해가는 이 나라 재벌들과 함께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하고 있다. 강호의 남성들이여, 왕자님들과 함께 그대들의 시대도 저물고 있다. 왕자님들을 흠모하는 여성들에게 “올라가지 못할 나무 쳐다 보지도 마라”고 타박할 수 있었던 꽃시절은 지나갔다. “못생긴 게 성격도 나쁘다”는 타박은 “못생긴 주제에 귀엽지도 않다”는 답으로 당신의 가슴팍에 꽂히고 있다. 다 자업자득이니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지어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무조건 귀여울지어다. 스마일~

(주의: 안 멋있는 당신이 깜찍한 척 하다가는 “깬다”는 구박만 당하기 십상이다. 세상에는 노력으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 깜찍한 짓도 깜찍한 애들이 해야 깜찍해진다.)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