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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프로그래머 허문영을 만나다
2003-10-01

““독립장편영화의 분투를 주목하라”

올해로 2년째 한국영화 프로그래밍을 책임지게 된 허문영 프로그래머는 유난히 말이 느리다. 그러나 속지말 것. 그 느릿한 말투 뒤에 누구보다 민첩하고 예민한 눈을 숨기고 있으니까. 올해 그의 재빠른 눈이 ‘알아본’영화는 바로 폐막작으로 선정한 박기형감독의 <아카시아>다. “ ‘화이트호러’ 혹은 ‘션샤인 호러’라고 부르고 싶다”는 이 영화는 공포영화의 관습적 장치인 어둠, 비명등을 배제하고 햇볕 쏟아지는 화사한 정원에서 어떻게 공포가 잉태될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렇듯 <아카시아>를 필두로 올해 한국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호러영화의 양산”이였다. <장화, 홍련> 으로 이어지는 올해 호러영화는 여름특수를 노린 기획상품으로서가 아니라, 지난해 멜로영화들이 그러했듯, 진지한 주제의식과 작가주의적 개성을 불어넣는 장르적 거점으로 자리잡았다. 또 하나의 주목할만한 특징이 있다면 바로 “독립장편영화의 분투”다. 올해는 단편영화나 다큐멘터리가 아닌 <선택> <그집앞> <오구>, 넓게는 까지 충무로 시스템밖에서 10편가량의 장편독립영화가 제작된 이례적인 해다. “앞으로 이러한 경향이 점차 강화될것으로 짐작이 된다. 만약 올해 수준만 유지할수 있다면 내년부터는 한국영화 파노라마의 하위에 디지털장편섹션을 마련할 것을 검토중”이라는 것이 허 프로그래머의 귀뜸.

“한국영화는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다. 늘 곡예를 하는 느낌이다. 또한 세계영화계에 충격을 주었던 여타 아시아 영화들의 미학적 태도와도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재능을 가진 감독들이 매년 등장하고, 산업적인 성장도 멈추지 않고 있는 한국영화에 대한 그의 시선은 염려보다는 낙관에 가깝다. “어떻게 보면 불가사의한 힘이다. 한국영화는 불안정성을 역동적인 힘으로 전환하는 강한 응집력이 있다. 또한 문화전반의 잠재력을 영화가 집중적으로 빨아들여 분출시키고 있는것처럼 보인다”고 확언하는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른 리듬을 타고 있었다.

글 백은하 / 사진 손홍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