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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거장, 일상의 종말을 고하다(+ English)
2003-10-02

<도플갱어> <해파리>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얼마 전 광주영화제에 초청된 일본의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현재 일본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할 감독으로 구로사와 기요시(1955~)를 꼽았다. 이미 거장으로 인정받은 기타노 다케시를 제외하고, 구로사와 기요시는 <오디션>의 미이케 다카시와 함께 국제영화제가 가장 선호하는 일본 감독이다. 이미 거장의 영역에 도달해 있음을 증명한 97년작 <큐어> 이후 구로사와 기요시는 <카리스마><카이로><강령><해파리> 등의 도전적인 작품들을 양산하며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고 있다. 또한 구로사와 기요시는 기타노 다케시처럼 돌출적인 인물이며 재능이 아니라, 일본영화계의 역사적 성과가 고스란히 이력에 담겨 있는 산 증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작품들

구로사와 기요시는 릿코대학 시절 자주제작영화를 만들며 아마추어 시절을 보냈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강의를 들었고, 영화 써클에서 활발한 토론을 거치면서 자신의 영화적 기반을 다졌다. 영화광이었던 구로사와 기요시의 데뷔작 <간다천 음란전쟁>(83)은 당시 등장했던 '인용이론'의 전범이 될 만한 영화였다. 간다천 양편에 세워진 아파트에, 강압적인 어머니와 섹스를 하는 대입수험생이 있는 중산층 가정과 자유분방한 여대생 두 명이 사는 집이 있다. 여대생이 망원경으로 앞집을 엿보다가 오로지 공부와 섹스에만 휘둘리는 수험생을 구출하러 가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리고 있다. 당시 일본의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던 근친상간과 점차 심각해지던 계급문제를 뒤섞은 <간다천 음란전쟁>은 장 뤽 고다르, 오즈 야스지로, 장 르누아르 등에게서 인용한 화면구성이나 인물 등이 영화 곳곳에 산재해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영화를 통해 영화를 배운 영화광 세대의 대표적인 감독이었고, "명작에 바치는 오마주야말로 영화에 대한 애정과 충성의 증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영화는 영화에 있다"라는 선언으로 자기의 존재기반을 설명했고, 이야기보다는 "영상",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에 더욱 주력했던 시기다. 그 탓에 대중의 호응은 크지 않았다. 83년 촬영했던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는 재촬영과 재편집을 거쳐서야 겨우 공개될 정도였다.

하지만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이력은 그것만이 아니다. 유럽영화의 숭배자인 구로사와 기요시는 동시에 미국 B급 액션영화와 이탈리아 호러 같은 장르영화에 일찌감치 심취해 있었다. 특히 공포영화 장르에서 구로사와 기요시는 자기만의 독특한 영역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타미 주조가 제작한 <스위트 홈>(1989)은 할리우드풍의 공포를 답습하는 데 그쳤지만, 92년 <지옥의 경비원>에서 구로사와는 '상업성과 작가성의 이항대립을 무효화'하는 데 성공한다. <지옥의 경비원>은 장르에 기생하면서 영상과 음의 유기적 재구축을 이뤄낸 폭력적인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들은 "영화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영화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란 방향으로 기운다. 걸작의 인용이 아닌, "자신의 작품을 통해 영화를 발견하고 여태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작품을 만들"게 된 것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공포영화는 97년 <큐어>로 획을 긋는다. <큐어>부터 구로사와의 영화는 공포영화이되 공포영화가 아닌 곳으로 나아간다. 살점이 뜯겨나가고, 선지피가 화면을 뒤덮는 장면은 구로사와의 영화에서 이미 중심이 아니다. <큐어>에서는 잔인한 살인 장면을, 아주 멀리서 롱 숏으로 보여준다. 살인이 벌어진다는 것을 영상으로 보여주지만, 그것의 자극적인 감흥은 배제한다. 그럼에도 그 끔찍함은 그대로 전달된다. 영상 자체의 리얼리티로 승부하는 것이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다. <큐어>에는 "영상이 가진 근본적인 힘"이 존재한다. 그것이 구로사와가 장르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큐어>는 구로사와 기요시라는 감독의 모든 것이 투영된 투명한 작품이다. 도쿄 지역에서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희생자들은 모두 X자로 목이 베어 있고, 가해자들은 상황을 기억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왜 그런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범인들은 교사, 의사, 경찰 같은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큐어>의 공포는 아주 사소하게 시작한다. 경찰은 3년 전부터 동료가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에 죽인다. 여의사는 여자라고 업신여기는 남자를 죽인다.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세상 사람 누구나 하나둘씩은 가지고 있는 사소한 적개심이 평범한 일상 위에 갑자기 튀어나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악마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렇게 일상의 견고한 모든 것들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우리들은 죽음과 직면하게 된다.

일상의 공포를 드러낸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일상의 공포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드러낸다. 마미야가 해변에서 만난 초등학교 교사의 집에 가, 그를 최면에 거는 장면은 <큐어>에서 가장 정밀하고, 유려한 명장면으로 꼽힐 만하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증오를 현실화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어둠과 불빛을 교차시키고, 멀리서 두 사람의 대화를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을 자극한다. 화면 틈새로 스며드는 듯한 효과음향과 음악도 아득한 현기증을 느끼게 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재능은 관객이 그 영화의 인물과 작품에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신 원커트"라고 흔히 평가한다. 그 몰입은 일반적인 카타르시스가 아닌,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듯한 '관조적 시선'으로 마무리된다. 그것이 바로 구로사와 기요시 자신의 작품을 "일본영화의 중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며 오히려 그 변두리에 위치한 것"으로 정의하는 이유다. <큐어>는 그 냉정함과 지적인 사유의 결합으로 스릴러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고, 구로사와 기요시가 일본영화계의 대표선수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후 구로사와 기요시는 <카리스마>와 <카이로>에서 '종말'의 풍경을 보여준다. 종말 그 자체가 아니라, 이 나른한 일상이 종말로 치달아가는 광경을 유려하게 그려낸다. <도플갱어>는 그 이후의 작품이다. 종말 이후의 작품. <도플갱어>에서는 종말의 풍경이 아니라, 그 이후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여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글 김봉석

Horror conceived by ordinary life

In 2003 Gwang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 renowned Japanese film critic Shigehiko HASUMI picked Kiyoshi KUROSAWA(b.1955) to be the most significant director in current Japanese cinema. Along with celebrated director Takeshi KITANO, KUROSAWA and Takashi MIIKE, director of <Audition> are the most requested directors in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circuit. Since his 1997 film <Cure>, in which he proved his talent and noteworthy skill as a great filmmaker, he has been creating provocative films, such as <Charisma>, <Pulse>, <Seance> and <Bright Future>, and challenging the world with his visions.

KUROSAWA spent his adolescent years in Rikko University making independent films. Also in these years, he attended lectures given by HASUMI and joined film clubs, where he actively participated in debates and laid a firm foundation for his future film career. His debut feature film <Kandagawa Wars>(1983) is about an overbearing mother and her high school son, whom she has sex with and 2 free spirited college girls, who live in the opposite apartment. One day, while the girls are spying on their neighbor, they decide to rescue the high school boy, whose life is ruled by sexual relationship with his mother and school. KUROSAWA portrays the confusion and conflict between characters in the most grotesque way.

KUROSAWA's film career includes other kinds of film as well. As an admirer of European cinema, he was fascinated with B-rated American action films and Italian horror films at an early age. Especially in horror genre, he quickly developed his own style of filmmaking.

With his 1997 film <Cure>, KUROSAWA made a lasting imprint in the history of horror films. Since then, his films have progressed towards the unconventional way of telling a horror story. He explores the horror created within the ordinary life and adapts it into his own style. The scene where Mamiya falls under hypnosis by a school teacher in <Cure>, is by far the most eloquent and beautiful scene. KUROSAWA does not explain the transition of hatred into reality. Instead, he creates fears through intersecting darkness with light and capturing their conversation from a distance. He has set a new benchmark in horror genre by combining both dispassionate and intellectual minds. In <Charisma> and <Pulse>, he reveals his vision of 'the end.' In <Doppelganger>, KUROSAWA reveals not only his vision of 'the end' but life beyond 'the end.' It is about people who have no choice but to continue living after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