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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타란티노를 사로잡은 한국감독을 아십니까?(+English)
2003-10-02

한국영화 회고전의 정창화 감독과 그의 ‘논스탑’ 액션의 세계

국제영화제에 몸담고 있으면서 받게 되는 가장 많은 질문은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를 추천해 달라는 것이다. 영화제의 속성상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영화들이 한꺼번에 소개되기 때문에 당연한 질문이다. 이번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총 242편의 영화들이 소개된다. 이 242편의 영화 중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는 당연히 ‘한국영화 회고전’에 소개되는 영화들이다. 이는 내가 회고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회고전에서 소개되는 영화는 이미 3, 40년의 세월이 검증해 준 영화이기 때문이다. 회고전의 주인공으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을 영화계에 몸담고, 꾸준히 영화를 만들었으며, 그 영화들이 영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고전에 소개되는 영화를 보는 것 만큼 안전한 선택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이번 영화제에서 소개되는 정창화 감독의 영화들은 회고전 영화들의 취약점일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춘 영화들이다. 따라서 이번 영화제에서 젊은 영화 팬들이 ‘정창화 회고전’의 영화들을 놓치는 것보다 더 아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정창화 감독은 25년의 감독생활을 통해 50여편의 영화를 감독하였고, 그 중 30여편의 ‘액션영화’를 만든 액션영화의 대가이다. 그러나 ‘액션영화’ 자체가 장르로 인식된 것이 최근의 일이고 보면 그가 활동하던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까지 ‘액션영화’는 단지 주먹다짐이 오고가는 ‘스릴러’ 영화들로 통용되었다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사실 ‘액션’은 장르가 가지는 공식화된 이야기틀이나, 관습화된 장면, 혹은 판별가능한 독특한 아이콘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나타나는 ‘스타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블록버스터로 불려지는 스펙터클 영화들의 등장과 함께 ‘액션’영화는 점차로 사건보다는 인물에 무게중심이 놓여있고, 사건의 해결역시 물리적인 힘대결로 이루어지는 영화로 장르화되었다. 정창화가 액션의 대가로 떠오른 이유는 그의 영화들이 단순히 ‘주먹다짐’ 장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현대적인 액션영화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식 액션영화의 선구자였으며, 영화 속에 ‘액션의 미학’을 새겨넣은 개척자였다.

1928년에 태어난 정창화는 40년대 말 최인규 감독의 문하생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이고, 53년 <최후의 유혹>으로 감독 데뷔하였다. 이로부터 약 7년간은 정창화가 감독으로서의 자기 진로를 모색하던 습작기이며 탐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동안 그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생동감 넘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고, 사극, 멜로드라마, 코미디, 스릴러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액션’을 첨가시키는 독특한 실험을 시도하였다. 정창화 감독의 영화인생은 1960년 <햇빛 쏟아지는 벌판>으로 전기를 맞이한다. 멜로와 액션이 결합된 이 영화는 관객의 호응과 더불어 평단의 환호를 동시에 얻어내면서 정창화에게 액션감독으로서의 공신력을 심어주었다. 60년대 정창화는 다양한 액션영화들을 선보인다. 만주를 배경으로 한 대륙활극과 전쟁영화를 필두로 사극과 청춘영화에 액션을 결합시킨 대중적인 액션을 펼쳐보이기 시작하였다.

역동적인 화면과 상업적인 매력을 동시에 지닌 영화들을 만들어낸 정창화는 1958년부터 한국과 홍콩의 합작영화에 참여해왔고, 1966년 <순간은 영원히>를 통해 자신의 활동영역을 홍콩으로 넓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무협영화가 중심을 이뤘던 홍콩의 대표영화사 쇼브라더스는 당시 세계적인 추세로 떠올랐던 현대액션에 관심을 가졌고, 홍콩 시가지를 배경으로 생동감 넘치는 화면을 선보였던 정창화를 초청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쇼브라더스로 자리를 옮긴 정창화는 첫 작품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화려한 현대액션물 <천면마녀>를 연출한다. 그러나, 현대물 전문이라는 한계에 갇히기를 거부한 그는 홍콩 감독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무협영화에 도전할 것을 결심하고 <아랑곡>(한국제목: <아랑곡의 혈투>)을 만들기에 이른다. <아랑곡>의 성공으로 연이어 무협영화를 만들게 된 정창화는 정통무협영화와 현대물의 중간지점에 자리잡은 권격영화 <죽음의 다섯손가락>을 발표하게 된다. 이 영화는 홍콩영화로는 최초로 미국으로 수출되어, 전미 흥행 1위를 차지하는 흥행기록을 세우며 그를 액션영화계에서 거물로 자리잡게 하였다. 쇼브라더스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당시 신생 영화사였던 골든 하베스트로 자리를 옮긴 정창화는 <흑야괴객>을 필두로 자신의 전문분야였던 현대액션물로 돌아온다. 그가 골든 하베스트에서 만든 현대물들은 이후 홍콩액션에서 흔히 보여지는 ‘논스탑’액션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정창화 감독이 한국과 홍콩에서 만든 영화 중 액션이 돋보이는 영화들로 구성되어졌다. 그러나 이 9편의 영화 중 서로 겹치는 영화가 없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다양한 액션의 세계를 탐험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하지만, 회고전에서 소개되는 영화 중 정창화의 가장 초기작인 <노다지>에서 새로운 액션을 찾아 어두운 뒷골목과 부둣가, 그리고 산악을 헤매던 정창화의 바쁜 걸음은 회고전 상영작 중 가장 최근 작품인 <흑야괴객>까지 멈출 줄 모른다. 그의 영화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액션, 재치넘치고 간결한 대사, 그리고 짜임새있는 이야기 구조는 30년의 세월을 건너서도 세련됨을 잃지 않는다. 세계 영화제 중에서 가장 힘이 넘치는 젊은 영화제로 평가 받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올해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신선한 경험은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이나 마구 터트려대는 화약 없이도 신명나는 액션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한국액션의 전설, 정창화의 힘이 넘치는 영화를 만나는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영화 회고전 코디네이터 조영정

A living legend of Korean action flicks

Out of 242 invited films at the 8th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he must see films are the films selected for Korean Cinema Retrospective. Films chosen for this section have already gained 30~40 years of respect and acknowledgement. This year, it is an honor to present films by director CHUNG Chang-hwa, a living legend of Korean action films.

During 25 years of his film career, CHUNG produced more than 50 films. And from those, over 30 films are ‘action films’. His action films are not just about ‘fist fights’ but, even then, his films included all the essential elements of modern day action films. CHUNG is the pioneer of Korean action films and the founding architect of "art of action."

Born in 1928, CHUNG Chang-hwa first set his foot in the film industry as a disciple of director CHOI In-kyu in late 1940's. In 1953, he made his debut feature film <The Final Temptation>. In 1960, his film <A Sunny Field> marked the turning point of his life. <A Sunny Field>, a well-balanced combination of melodrama and action film, received much praise from both the critics, as well as the audience. It strengthened CHUNG's confidence with the public as an action film director.

With his ability to fuse powerful visuals with commercial appeals, CHUNG was asked to participate in Korean-Hong Kong co-productions starting 1958. In 1966, he received an offer from Shaw Brothers to collaborate in filmmaking. Shaw Brothers, a prominent Hong Kong production company with impressive list of infamous sword-playing films, got interested in modern action films, which was becoming the hottest trend worldwide. The first project with Shaw Brothers was a magnificent modern action film <Temptress with a Thousand Faces> with a female leading character. Then, refusing to be labeled as a ‘modern action’ filmmaker, CHUNG challenged the Hong Kong cinema by making his own sword-playing film <Valley of the Fangs>. With its success, he moved on to make a martial arts film <Five Fingers of Death(a.k.a. The King Boxer)>, a middle ground between traditional sword-playing films and modern action films. It became the first Hong Kong film to be distributed in U.S., reaching #1 in U.S. box office. As the most celebrated action film director, he joined Golden Harvest. There, he reverted to his old original specialty of modern action films with <The Devil’s Treasure>. His films with Golden Harvest showed ‘non-stop’ action pattern, which will become a common element in later on Hong Kong action films.

CHUNG Chang-hwa’s most well accomplished works will be presented at this year’s Korean Cinema Retrospective. Even after 40 years, his films are guaranteed to bring refreshing enjoyment to all audience, with their spectacular action sequences, refined dialogue, and solid storyli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