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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Choice 1] <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
2003-10-02

오픈 시네마/독일/2003년/118분/감독 볼프강 베커/ 오후 7:30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상영관

동독의 열혈 공산당원이자 서방으로 가버린 남편 뒤에 남아 혼자 힘으로 남매를 키워낸 헌신적인 어머니 크리스티아네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심장마비로 혼수상태에 빠진다. 8개월 뒤. 아들은 위성방송 안테나 세일즈맨으로, 딸은 버거킹 점원으로 전직한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엄마는 의식을 회복한다. 그러나 조그만 충격도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에 효자 알렉스는 블록버스터 급 거짓말에 착수한다. 그 규모란 에미르 쿠스트리차 감독의 <언더그라운드>에서 저질러진 사기극에 맞먹는다. “사회주의 체제는 번영 중”이라고 엄마에게 말한 알렉스는 가게 선반에서 이미 사라진 공산주의 사회의 상품을 구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진다. 이미 사장된 동독 시절 패션을 가족에게 강요하고 갓난아기 조카에게까지 물자 부족한 시절의 플라스틱 기저귀를 채운다. 압권은 감독 지망생 동료의 도움으로 제작한 가짜 9시 뉴스. 알렉스의 어머니가 창 밖에서 코카콜라 광고판을 보고 경악한 날 저녁, 알렉스의 ‘사제(私製) 뉴스’는 본디 동독의 것이었던 코카콜라의 상표권이 이제야 돌아왔다고 전한다.

알렉스는 마치 구 동독의 지배자들처럼 통제 노이로제에 사로잡힌다. 한편 그가 지어낸 동화는 부지불식 중에 대안적 통일의 내러티브를 지어낸다. 그 상상의 나라에서는 서독인들이 동베를린을 향해 장벽을 넘고 물욕과 출세주의가 공생을 도모하는 바람직한 사회주의적 가치에 무릎꿇는다. 어머니의 정신적 평화를 위해 시작된 거짓말은 어느새 이상적인 통일의 형태에 대한 순수한 젊은이의 상상으로 탈바꿈한다. 결국 열성당원이었던 엄마와 데모 대열에 섰던 아들의 꿈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던 것. “엄마가 살았던 곳은 엄마가 믿었던 나라였다. 그러나 정확히 그 형태로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던 나라였다”라고 알렉스는 뇌까린다. 그러던 어느날 가족 소풍에서 엄마는 사라진 아버지에 관한 놀라운 비밀을 털어놓는다. 가족 멜로드라마, 성장영화, 사회풍자극으로서 고루 만족스런 작품이며 모든 대사와 세부적 설정이 의미심장한 메타포로 잘 조립된 어른을 위한 동화다. 특히 어린 알렉스의 영웅이었던 동독 최초의 우주 비행사와, 소년에게는 ‘낯선 우주’나 다름없는 서방으로 떠나간 아버지를 연결짓는 대목은 몽환적이다. 단 몇 달 만에 물적, 윤리적 토대를 갈아치운 동독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패스트 모션 등 코미디 기법으로 소화한 센스도 발랄하다. 독일인의 유머감각에 대한 인색한 평가를 얼마간 업그레이드시킨 영화다.

글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