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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Choice 2] <인 디스 월드 (In This World)>
2003-10-02

월드 시네마/영국/2003년/90분/ 감독 마이클 윈터보텀/ 오후 2시 부산1관

마이클 윈터보텀은 환경과 필사적으로 투쟁하는 인간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감독이다. 그래서 불꽃 같고 얼음 같은 윈터보텀의 영화를 보는 일은 종종 단단히 감은 붕대에 배어나오는 피를 보는 경험과 비슷하다. <인 디스 월드>는 파키스탄 북서부 샴샤투의 난민 캠프를 떠나 그들의 세계에서 ‘실크 로드’로 통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가로지르는 밀입국 길에 오른 아프가니스탄 난민 소년들의 피맺힌 기행문이다. 또한 “80억 달러를 탈리반 정권을 무너뜨리는 폭격에 쏟아넣은 서구는, 그로 말미암아 삶의 기반을 파괴당한 사람들에게 얼마의 빚을 지고 있는가?”라는 통렬한 물음이다.

영화는 1979년 소련의 침공과 미국의 2001년 폭격으로 고향을 떠난 5만 명이 넘는 아프가니스탄이 살고 있는 파키스탄 샴샤투에서 출발한다. 아들 에나야툴라를 영국으로 불법 이주시키기로 결심한 와킬은 영어를 할 줄 아는 조카 자말을 통역으로 딸려보내기로 한다. 두 젊은이는 타인의 곤경을 착취해 먹고 사는 밀입국 브로커의 미덥지 않은 손에 의해 ‘탈주’를 기도하지만 런던으로 가는 길에는 덫과 함정투성이다. 돈과 서류가 부족해 모멸감을 맛보는가하면, 간신히 오른 이란 가는 버스에서 허무하게 송환되고, 40시간 넘게 짐짝처럼 컨테이너에 갇혀 있다가 짐승처럼 숨지기도 한다. 가슴을 졸이며 이란에서 터키로, 다시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와 프랑스로 이어지는 생사를 건 절박한 여행을 지켜보다보면, ‘정치적 망명자’와 ‘경제적 난민’의 구별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은밀한 상황을 근접 앵글로 촬영한 장면이 나올 때까지는 다큐멘터리가 아님을 깨닫기 어려운 <인 디스 월드>는 비전문 배우와 실제 난민을 소형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한 게릴라 식 필름메이킹의 소산이다. 작가 토니 그리소니는 경험이 있는 난민을 인터뷰해 시나리오를 썼고 시나리오를 뼈대로 즉흥 연기가 이루어졌다. 간간이 보이는 힘과 시정이 넘치는 프레임과 음악의 호소력은 장르 영화가 부럽지 않다. 숨돌릴 틈 없는 위기상황 못지 않게, 여정 틈틈이 벌이는 아이다운 눈싸움과 공놀이, 잠자리에서 소곤거리는 우스갯소리가 애달프다.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표정이 사라져가는 소년의 얼굴을 지켜본 관객이라면, 자기최면에 가까운 강박적 기도로 맺어지는 영화의 결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했다.

글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