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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처음이라 더 좋았지!
2003-10-03

‘아니.. 비행기표가 꽁짜라구? 거기다 호텔도 나와? 오~ 감동!’

99년이었다. 영화제에 초청받은 것도 기쁘기 그지없건만 숙식까지 제공한다니 이런 횡재가 어디 있담. 거기다 예삿 잔치인가? 1회 때부터 오매불망턴 감독들 싸인 받아가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우게 해준 바로 그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가 아니던가? 그곳에 내 영화 <지우개 따먹기>를 들고 가다니. 그땐 정말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었다.

그러나 영화제 일정에 맞추어 제작을 서두르는 것이 다반사다 보니, 장편영화들에 밀려 내 영화의 후반작업 일정은 늦추어졌고, 출품 시한을 지킬 자신이 없었던 나는 쪽팔리게시리 영화제 쪽에 사정사정해야 했다. 뜬눈으로 지새다시피 한 자막작업을 마치고서 허둥지둥 프린트를 들고 비행기에 올라 부산에 닿았을 때는 개막식 시간이 임박한 해질녘이었다.

한시름 놓나 했더니, 산 넘어 산이었다. 급한 마음에 자원봉사자가 안내해주는 버스에 곧장 올랐는데 숙소에 들를 줄 알았던 버스는 개막식 시간이 늦었다며 곧바로 수영만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비행기에서 졸다가 떡이 진 머리는 어쩔 것이며, 캐주얼을 넘어서 궁해보이기까지 한 옷차림은 또 어쩌란 말인가. 게다가 양손엔 옷가방과 영화홍보를 위해 가져온 지우개 몇 박스와 프린트까지 주섬주섬…. 이 차림으로 ‘어찌 개막식엘 가나’ 걱정하는 동안 무정한 버스는 수많은 취재진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개막식장 붉은 카펫 앞에 떡하고 섰다.

오, 통재라. 평소 TV에서나 보던 붉은 카펫을 밟아보는 것은 좋지만... 이건 정말 아니었다. 도저히 붉은 카펫으로 걸어 들어갈 수 없었던 나는, 버스에서 마지막으로 내려서 꾸역꾸역 짐을 챙겨 붉은 카펫이 아닌 기자들 뒤편으로 슬그머니 들어가야 했다. 우씨~ 나도 영화 속에서처럼 멋지게 손도 흔들고 뭐 그렇게는 아니더라도 당당하게 들어가고 싶었건만... 흐흐흐..

이후 많은 국내외 영화제들을 떠돌았지만 아직도 내 인생 처음으로 내 작품을 들고 갔던, 그리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사건 사고들이 가득했던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잊을 수 없다. 그나저나 어서 빨리 좋은 영화 찍어서 이번엔 기필코 멋드러지게 붉은 카펫을 지나 개막식장으로 걸어 들어가야 할 터인데... 과연? 가능할까? 민동현/ 단편 <지우개 따먹기><외계의 제19호 계획> 연출, 애니메이션 <붕어빵> 공동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