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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Choice 3] <자줏빛 나비 (Purple Butterfly)>,<마더 (The Mother)>,<아타나주아 (The Fast Runner)>,<마트루부미: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땅 (Matrubhoomi:Nation without Women)>
2003-10-03

<자줏빛 나비 (Purple Butterfly)>

아시아영화의 창/ 중국/ 2003년/ 128분/ 감독 로우예/ 오후 5시 부산 1관

“상하이는 나에게 특별한 도시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다보니 특별한 애정 같은 게 있다. 영화에서 그런 상하이의 독특한 도시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해도 그건 의도된 것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던 로우예는 상하이 예찬론을 잊지 않았다. <자줏빛 나비>에서도 로우예는 자신의 고향 상하이에 카메라를 드리운다. 이번엔 1930년대로 거슬러 오른다. 일본이 중국을 점하는 시대적 상황이 병풍이다. 때는 1931년. 자줏빛 나비라 불리우는 중국의 레지스탕스 조직은 일본 비밀 경찰의 우두머리인 야마모토를 살해할 계획을 비밀리에 세운다. 거사를 맡게 된 이는 일본군에 의해 가족을 잃은 뒤부터서 공장에 다니며 레지스탕스 조직 활동을 하는 딩후이다. 그러나 야마모토를 경호하는 직속 부하가 3년 전 딩후이 자신이 대학시절 사귀었던 이타미임을 알게 되고 고민에 빠진다. 연인인가, 동지인가. 선택의 기로에서 딩후이는 결국 총을 잡기로 맘먹는다. 그러나 야마모토를 죽이기 위해 이타미에게 다가갈수록 딩후이는 자신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게다가 이타미는 딩후이에게 일본의 대대적인 공습이 있을 것이라며 자신과 함께 일본으로 떠나자고 여러번 제의한다.

퇴폐적인 홍조로 채색한 1930년대 상하이의 뒷골목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이 멜로영화는 머금었던 신파를 후반부에서 주저없이 쏟아놓는다. 딩후이는 가슴에 권총을 품고 야마모토가 주선한 파티에 참석하게 되고, 이타미는 그런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고서 속삭인다. 모든 것은 끝났고, 떠나기만 하면 된다고. 순간 누군가의 총에서 불꽃이 일고, 핏빛 로맨스는 파국으로 끝을 맺는다. <영웅> <집으로 가는 길>의 히로인 장쯔이와 로 국내 관객에게 얼굴을 알린 나카무라 도오루가 딩후이와 이타미로 각각 출연한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화어권 영화로는 유일하게 라인업에 올라 큰 기대를 모았으나 그에 걸맞는 호응을 얻진 못했다.

글 이영진

<마더 (The Mother)>

월드 시네마/ 영국/ 2003년/ 112분/ 감독 로저 미첼/ 오후 2시 대영1관

런던의 아들과 딸을 찾아나서기 위해 옷을 여미는 노부부. 그러나 아들 집 문턱을 밟은 지 며칠 안 돼 남편은 숨을 거두고, 홀로 남은 메이는 외손자들을 돌봐주는 조건으로 딸 폴라의 집에 머무는 신세가 된다. 예기치 않던 황혼의 로맨스도 이 즈음 시작된다. 상대는 아들의 친구이자 딸의 연인인 목수 대런. 그녀는 대런의 애정을 확신치 못하는 딸을 대신하여 나간 자리에서 키스 세례를 받는다. 조심스레 한발 딛은 호감은 좀처럼 물러설 줄 모른다. 대런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사이까지 진전한 메이는 좀처럼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에 포만 상태가 된다. 한편, 평소 자신에게 칭찬 한번 주지 않았다며 가슴 한켠에 메이에 대한 섭섭함을 담아왔던 폴라는 자신의 어머니가 대런과 사랑에 빠졌음을 알게 되고, 연적이 된 모녀의 갈등은 커져간다.

밑천은 같아도 유난히 구경꾼을 솔깃하게 만드는 ‘꾼’들이 있다. 감독인 로저 미첼도 그 중 한명이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촌구석의 책방 주인과 할리우드 A급 스타의 로맨스를 촌스럽지 않은 설득으로 버무려 낸 <노팅 힐> 때의 솜씨가 이번엔 더욱 무르익었다.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평온한 풍경으로 시작해서 좀처럼 식을 것 같지 않은 열정의 계곡을 지나 다시 메이의 쓸쓸한 내면에 가닿는 동안 로저 미첼은 호들갑을 떨지 않고 과장을 더하지도 않고 여인의 여정에 말없이 동승한다. 로맨스에 취해 여행을 떠나자는 메이의 제안에 쓴웃음 지으며 외면하는 대런이나 해괴망측한 춘화를 그린 엄마에게 주먹을 날리는 폴라는 현실적이면서 개성적인 캐릭터다. 그 위에 감정의 ‘핑퐁’을 놓치지 않는 배우들의 호연이 자연스레 얹혀진다.

글 이영진

<아타나주아 (The Fast Runner)>

캐나다영화 특별전/ 캐나다/ 2001년/ 174분/ 감독 자하리아스 크눅/ 오후 5시 대영1관

<아타나주아>는 우리가 흔히 ‘에스키모’라 부르는 이누이트족의 전래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모든 스탭과 배우가 이누이트족으로 구성된 ‘최초의 이누이트 장편 극영화’인 이 영화는 독특한 영화언어를 인정받아 2001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알래스카 빙원의 마을에 어느날 사람의 모습을 한 악령이 찾아온다. 그는 족장을 살해하고 사우리를 족장에 앉힌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우리는 아타나주아의 아버지인 툴리막을 쫓아낸다. 수년이 흘러 툴리막의 아들들은 건장하게 자라난다. 가장 빨리 달리기로 유명한 아타나주아와 가장 힘이 세기로 이름난 이막주악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기대를 모으는 청년이 되는 것. 아타나주아는 마을의 아름다운 처녀 아투앗과 사랑하는 사이지만, 족장의 아들 오키는 이들 사이를 맴돌며 아투앗을 가로채려 한다. 결국 남자들은 결투를 벌이고 선한 영혼의 힘을 받은 아타나주아는 오키를 쓰러뜨리고 아투앗과 결혼한다. 그렇게 평안한 세월은 오래가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아타나주아를 짝사랑하던 오키의 여동생 푸야가 아타나주아의 두번째 부인이 되면서 불행의 그림자가 다가온다. 푸야는 이막주악을 꼬드겨 정사를 하려다 들킨 뒤 사우리에게는 아타나주아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누이트들의 신비로운 삶의 모습을 카메라 안에 담으려 한 <아타나주아>는 진귀한 볼거리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영화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하얀 대지와 지평선이 이어지는 빙원과 그 속에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민족지적 가치마저 갖고 있다. 서구인의 시선이 아니라 이누이트 자신의 눈으로 담으려 했다는 크눅 감독의 이야기처럼 영화는 이누이트의 신비로운 일상사를 새롭게 보여준다.

글 문석

<마트루부미: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땅 (Matrubhoomi:Nation without Women)>

새로운 물결/ 인도/ 2000년/ 84분/ 감독 마니쉬 자/ 오전 10시 메가박스 6관

동굴에 모여든 사람들. 죄다 남자다. 불이 꺼지고 조그만 모니터가 켜진다. 포르노다. 수백번 돌려봤는지 화면은 모두 일그러져 있다. 교성 소리만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장내는 이내 달아오른다. 수염 덥수룩한 할아버지는 심지어 눈물까지 떨어뜨린다. 회당에 모여든 사람들. 죄다 남자다. 옆 마을에서 시집 오는 처녀를 제외하곤. 성대한 결혼식이 진행된다. 그러나 장내는 이내 웅성거린다. 처녀의 아랫도리가 벗겨지면서 여장 남자임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마트루부미: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땅>은 부제가 말해주듯 ‘XY 염색체의 소멸이 빚어낸 해프닝’으로 시작한다. 여아살해가 극에 달해 남자들만 남게 된 마을. 이곳의 재력가는 아들들의 성화에 못이겨 승려에게 옆 마을에서 처녀를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승려는 그동안 몸을 숨기고 살아온 아리따운 처녀를 발견하게 되고, 재력가는 그녀의 아버지를 돈으로 꾀어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다. 코믹한 상황의 전개는 여기까지다. 낮엔 가사 노동에 시달리고 밤엔 순번을 정해 침소에 드는 재력가와 아들들 때문에 혹사당하는 그녀. 자신을 위해주는 막내아들에게 마음을 주지만, 그녀는 이내 다른 형제들의 질투에 의해 마굿간으로 쫒겨나게 되고 급기야 마을공동체의 성욕을 위한 노리갯감으로 전락한다. 과도한 지참금 요구라는 관습이 여아 차별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줄어드는 여성 인구가 연간 5천만명에 달한다는 인도의 현실을 고려할때 여아살해 관습이 종국엔 공동체의 파국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허무맹랑한 가정에 그치지 않는다.

글 이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