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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Choice 1] <자토이치 (Zatoichi)>
2003-10-03

일본 2003년 115분 감독 기타노 다케시

총 대신 검을 든 다케시, 검은 양복을 벗고 기모노를 입은 다케시. 기타노 다케시의 첫번째 시대극 <자토이치>는 이런 눈에 보이는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다. 때는 19세기. 떠돌이 장님 자토이치는 생존을 위해 안마사로 살아가지만 사실 무시못할 칼솜씨를 가진 전설의 검객이다. 한 마을로 흘러들어간 그는 패거리 검객들의 손에 가족이 몰살당한 게이샤 자매, 사실은 남매,를 만나게 된다. 자토이치는 이들을 도와 일당들을 소탕하고 다시 여행길에 오른다.

<자토이치>의 진짜 재미는 매우 새롭게 보이는 이 영화 속에서 결국 전작들과 일맥상통하는 ‘다케시적’인 요소들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비정한 싸움꾼들 사이를 오가는 서늘한 농담, 척박한 상황을 비집고 튀어 나오는 서정적인 기운들. 오토바이 사고 후 트레이드 마트가 된 오른쪽 빰은 두눈을 감고 있어도 여전히 꿈찔꿈찔거리고, 심지어 의상과 머리모양, 배경을 제외한다면야 <자토이치>속 칼을 든 패거리의 행태는 현재의 야쿠자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신출귀몰하는 맹인검객 ‘자토이치’ 시리즈는 30대 이상의 일본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큼 유명한 TV시리즈이자 영화다. 특히 신타로 가츄라는 배우에 의해 1962년부터 1989년까지 26회 만들어진 이 시리즈는 그의 사망 이후엔 어느 누구도 감히 새로운 <자토이치>를 만든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기타노 역시 이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에 "해외로 도피 할 생각까지 했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면에서 <자토이치>는 기타노 다케시가 만들고 싶어했던 영화였다기 보다는, 관객들이 그로부터 보고 싶어했던 영화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꺼이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인 채 이 불가능한 프로젝트를 가장 다케시답게, 가장 오락적으로 완수했다. 그리고 신타로의 ‘원전’에서 자토이치가 장님이다, 사무라이다, 도박을 잘한다는 3가지 요소만을 가져왔을 뿐 전혀 다른 영화로 만들어 냈다. “현재가 아니라는 점은 현실적으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를 주었다. 자토이치가 파란눈에 금발로 등장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다.” <돌스>에서 비극적 사랑을 앞뒤로 포근히 감싸안았던 극장 신은 <자토이치>에서 다시 부활해 현실감을 증발시킨 원초적 흥겨움으로 관객들을 몰아간다. 일본 락그룹 <문라이더스>의 게이치 스즈키가 사운드 트랙을 담당했고 마지막 리드미컬한 타악기 소리에 맞춰 출연배우들의 한 바탕 군무로 선보이는 탭 댄스 안무는 <The Stripes>가 맡았다.

<자토이치>는 총으로 단련된 이 비정한 야쿠자의 노후대책으로서 손색이 없는 영화인 동시에, 이제 기타노 다케시가 질끈 감은 눈으로도 관객들의 혈을 정확히 집어내는 대의(大醫)의 경지에 올랐음을 증명하는 영화다. 그런데 자토이치가 정말 장님이었을까? 그건 영화를 봐야만 알 수 있는 비밀이다.

글 백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