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PIFF Daily > 8회(2003) > Todays News
[Talk] 영화 한 편도 못 본 사연 | 장진 영화감독
장진(영화감독) 2003-10-04

부산은 항구다.

부산은... 진짜 항구다. 그래서 물고기도 많다. 그 물고기를 잡아오는 사람도 많고 잡아온 물고기를 사서 먹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그 물고기들을 사서 다시 기르거나 누구에게 선물로 주는 사람도 없다곤 말할 순 없겠지만 여하튼... 부산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항구며 어촌(무지 큰)이며 최대의 어물 소비 도시이다.

부산은 영화의 도시다.

이젠 아시아 최대라고 할수 있는 부산 영화제를 필두로 대한민국에서 영화찍기에 가장 현명한 도시며 영화를 가장 유쾌하게 즐기는 도시일수...도 있다. 허나, 내 귀에 그런말을 잘 안들어온다. 언제나 이맘때만 되면 부산은 영화의 도시다, 라는 말보단 부산은 겁나게 많은 물고기들과 그 주변들이 오가는 항구라는게 내 기억을 지배한다...

아, 언제 였더라 ....두번째 부산영화제가 열리던 시기에... 난 당당히 초대장을 부여받고 내 영화를 상영했고... 이상한 사진이 박혀 있는 ID카드를 가지고 온갖 영화를 다 볼수 있는 자격으로 부산을 헤매고 다녔다. 그리고 그런 어느 저녁 난 그 항구 도시가 낳은 또다른 산업사회 가장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자갈치 시장 한복판에 자리잡은 횟집이었지 아마....

남단 모서리, 그 어촌(알다시피 무지 큰)의 여러명이 자신들의 앞바다에서 잡아온 싱싱 전어를 먹는 자리에 날 초대했고 난 처음으로 물고기에 콩가루를 섞어서 먹는 낯선 저녁식사를 했다. 그렇다. 문제는 전어다. 어떻게 생겼냐고? 어찌 그걸 알수 있으랴? 내가 본건 몸이 60등분된 물컹한 단백질이었으니... ‘번식력이 좋다. 그래서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 전어를 먹어야 아들을 잘 낳는다. ...전어를 먹지 않고서 인생을 논할수 없다... 김영삼 대통령은 전어를 보며 정치 구상을 했다’ 등등... 온갖 전어 예찬론을 들으며... 맞이한 내 첫 번째 전어와의 저녁식사는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

식사가 끝나고 30분이 지났을까... 난 히드라로 변했다. 분명 내 장기능은 건강하게 할일들 하며 잘 버티어내고 있었는데... 전어가 내 배안으로 들어간 순간... 그 전어들은 춤을 추고 유영을 하고 번식력이 좋아 그 숫자가 몇 배로 늘어났는지... 난 내 안에 숨겨 놓은 모든 것들을 밖으로 내보내야만 했다. 아, 난 투명해졌다. 난 무엇 하나 속에다 감추고 살 수 없었고... 어촌(누누히 말하지만 굉장히 큰)이 만들어 낸 은혜로운 관장 욕법으로...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어 졌다. 난 기억한다... 그 횟집에서 내 숙소까지가 총총걸음으로 몇발자욱인지... 그 증상은 그 다음날도 그랬다... 먹은것도 없는데... 내 뱃속에 오래토록 간직한 모든 것들이 하나된 색깔로 통일된 모습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그해, 두 번째 부산 영화제.... 난 단 한편의 영화도 볼 수 없었다.

부산은 항구다... 부산은 진짜 항구肛懼(똥구멍 항, 위태로울 구)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