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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Choice 1] <선택(The Road Taken)>
2003-10-04

<선택(The Road Taken)>

새로운 물결/ 한국/ 2003년/ 103분/ 감독 홍기선/

오후 7시 메가박스6관

김선명, 1951년 국경경비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1995년 석방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 감옥에 갇혀 있던 사상범, 90년대 초의 영화운동집단 장산곶매를 거쳐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로 데뷔한 홍기선 감독은 10년 만에 연출한 두 번째 영화에서 결코 양심을 버리지 못했던 이 인물의 삶을 그린다.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끊임없이 전향서를 요구하는 체제와 양심에 오물을 묻히고 싶지 않았던 개인의 대립과 갈등이다. 그의 사상적 투철함이나 정치적 판단력이 어떠했든, 거짓과 타협하지 않는 인간, 김선명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영화는 박정희 정권이 ‘조국근대화’의 깃발을 들고 체제경쟁에 몰두하던 1960∼70년대에 초점을 맞춘다. 새마을운동과 7·4 남북공동선언과 긴급조치가 바깥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동안 감옥에서는 전향서를 받기 위한 고문과 협박이 진행된다. 김선명은 두들겨맞고 굶주림에 창자가 뒤틀리고 동지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굳건해진다. 공산주의를 믿는다는 이유로 이처럼 박해받는 세상이라면 기어이 그 세상에 나갈 이유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은 자유가 감옥 밖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 자유는 감옥에 있었다”라고 말한다. 영화는 45년간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김선명이 석방되던 날, 감옥을 나서는 김선명과 그를 배웅하는 교도소 교화과장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교화과장은 쇠창살에 가려지고 김선명은 세상의 빛에 감싸인다. 정권이 요구하는 대로 순응하며 스스로 애국자라고 여겼던 교화과장은 변화하는 세상에 떠밀려 설 자리를 잃어간다. 고개 숙인 그의 모습에는 김선명을 감옥에 가둬놓고도 안절부절 못했던 불의의 시대, 증오의 역사가 투영돼 있는 것이다.

홍기선 감독은 “어떻게 한 인간이 45년을 감옥에서 버틸 수 있었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선택>을 시작했다고 한다. 1997년에 시나리오를 썼고 2000년에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사전제작지원을 받았으나 투자자 확보와 캐스팅이 어려워 촬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지난해 겨우 촬영을 마쳤다. 무려 5년 만에 완성한 셈인데 이렇게 오랜 기간이 걸린 이유는 상업적인 영화가 아니라는 것 때문이었다. 김선명의 ‘선택’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홍기선 감독의 ‘선택’ 역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글 남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