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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1] “이제 아시아 전체의 고통을 말할 때”
2003-10-04

모흐센 마흐말바프-하나 마흐말바프 부녀 감독

이란 사람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다. 그의 부인 마르지예 메쉬키니도 역시 영화를 만든다.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민주적인 교육법을 실천하기 위해 영화학교를 세워 교장을 자임했고, 그 학교의 학생 중에는 자녀들도 포함되어 있다. 큰 딸 사미라 마흐말바프는 아버지 밑에서 영화를 배워 세 번째 영화 <오후 5시>로 올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언니를 따라다니며 아프간의 현실에 눈뜬 막내동생 하나 마흐말바프는 <오후 5시>의 캐스팅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광기의 즐거움>을 만들었다(이 두 편을 포함, 아버지 마흐말바프가 제작한 <오사마>까지 이들 가족의 영화 세 편이 이번 영화제에 상영된다). 이들은 현재 가장 척박한 땅에서 영화를 만들면서도 영화가 현실을 구제할 수 있다는, 외면당한 믿음을 끝끝내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또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형의 공동체적 ‘작가 집단’이다.

그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올해 부산영화제가 선정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받기 위해 막내딸 하나 마흐말바프와 부산을 방문했다. 2000년 온 가족이 함께 방문한 이후 두 번째이다. “부산영화제는 출품된 영화들도 그렇지만 언제나 역동적이다. 부산영화제가 성공적인 이유는 한국관객들이 매우 친절하기 때문이고, 영화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에너지가 넘쳐나기 때문”이라고 방문 소감을 밝힌다.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그의 영화학교의 특징을 이렇게 소개한다. “우리는 하루에 몇 시간씩 여러 과목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몇 달에 걸쳐 한 가지 과목만을 수업한다. 예를 들어 두 달 동안 시만 공부하거나 편집만 공부하는 식이다.” 그 학교에 하나 마흐말바프가 입학한 것은 “정규과정을 포기한 14살”때였다. 하나 마흐말바프는 언니 사미라의 영화 <사과>에서 스크립터를 하면서 현장경험을 쌓았다. 모흐센은 “하나가 어릴 적부터 사진, 스크립을 실제로 배워왔기 때문에 지금의 현재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한다. 그는 “예전에는 어린 감독들이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디지털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을 한다”고 딸의 세대에 희망을 건다.

두 ‘감독’에 대한 아버지의 평가는 이렇다. “하나는 사미라보다 어리다. 사미라는 영화도 그렇지만 성격도 역동적이다. 하나는 진지하고 기술적인 면이 뛰어나다. 그러나 사미라는 기술적인 면에는 별 관심이 없으며 예술적인 면에 더욱 관심을 둔다. 둘은 같은 무엇을 보아도 다른 생각을 해낸다.” 진지하다는 아버지의 말 그대로 하나는 “영화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고통을 보여주는 수단이다. 아버지 역시 그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도록 영화를 만들라고 가르친다. 부르카를 쓰고 다니며, 카메라만 보아도 놀라는 아프간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자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이 가족에게 지금 주어진 영화적 과제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이라고,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강조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란의 국경지역이다. 현재 300만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이란으로 넘어오고 있고, 그들의 자녀 대부분은 학교도 못 다니고 있는 상태이다. 나는 아프가니스탄의 어느 도시에 갔을 때 그곳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영화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탈레반 정권은 내가 정치적으로 발언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 그것은 이란 정권도 마찬가지이다. 탈레반 정권은 나를 납치하려 한 적도 있고, 하나도 두 번이나 납치당할 뻔 했다. 테러를 당하거나 투옥당할 위험은 이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중요한 건 우리가 끝내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고난에 뒤따른 것이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 상’ 같은 명예로운 결실이겠지만, 여전히 마흐말바프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혼동하지 않는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다. 그러나 책임이 뒤따른다. 이제는 이란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고통을 말할 때가 온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상을 받는다는 것은 이 상을 과연 내가 받을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드는 사람, 재능이 있어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 검열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 배급자를 못 구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도 내가 과연 이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말하자면 우리는 예술가라고 우쭐거리고 싶지 않다. 단지 영화로 세계를 향해 말하고 싶을 뿐이다”

글 정한석 / 사진 손홍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