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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형, 미안했어!", 배우 류승범
2003-10-05

류승범/ 배우 <피도 눈물도 없이> <품행제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부산영화제를 찾았을때 우리 형제(류승완감독과 나)는 난생처음 접한 축제의 분위기에 도취되어 정신이 없었다. 전세계에서 날아온 예술영화들을 한번에 만날 수 있어서, 는 당연 아니었다. 이 영화제가 뿜어대는 활기찬 공기와 황홀한 분위기에 취해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들떴던 것 같다. 게다가 이런 황홀경은 극장에서 그치지 않고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까지 이어졌다. 이제 갓 첫 영화를 만들고, 출연한 감독이자 배우로서 우리는 이곳 저곳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처음 들어간 포장마차에서 강수연 선배님를 만나게 되었다. ‘이런, 내 생전에 강수연을 다 보다니!’ 그러나 놀람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해운대 앞바다에 포장마차 한칸 한칸이 멀티플렉스 상영관처럼 이름만 대면 알만한 배우들과 영화관계자들로 꽉꽉 차있는 것이었다. 결국 형과 나는 이 포장마차에서 저 포장마차로, 거의 릴레이처럼 이어지며 인사와 동시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결국 지나친 음주로 인해 우리 형제는 다음날 부산방송과의 인터뷰 약속을 펑크내는 대형사고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워낙 인터뷰에 대한 중요성도 모를 때기도 했고, 매니저도 없었고, 도저히 일어날 기력도 말할 기력도 없었던 것이다. 불쌍한 것은 감독도 없이 동료배우도 없이 인터뷰장에 당도한 배중식 선배였다. 중식이 형은 지난 밤에 얌전히 숙소에서 잠을 잤고 별탈없이 인터뷰장에 나왔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한참 후 우리는 중식이 형이 인터뷰라는 전장에서 홀로 외로이 싸우는 장면을 TV를 통해 볼수 있었다. 기자가 묻는다. “이 영화에 여자가 전혀 등장하지 않네요, 남자들끼리만 영화를 찍었군요” 중식이 형이 대답한다. “예, 히로인들의 영화라고 볼수있죠”. 그때 사악한 우리형제를 숙소 TV앞에서 배꼽이 빠져라 웃고 있었다. “바보, ‘히어로’아냐? 히로인이 뭐야 우헷헷헷헷!” 우리 대신 땀 뻘뻘 흘리는 수고도 아랑곳 없이 웃고 있다니! 아마도 술기운이 우리의 심장을 더 뻔뻔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참 후 술을 깨고 나니 중식이 형에게도, 갑작스럽게 방송펑크 상황까지 몰고간 방송국분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몸둘 바를 모르게 되었다. 이 기회를 빌어 부산방송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머리숙여 사과 드립니다. 저는 올해 <아라한 장풍대작전>촬영 때문에 부산에 못 가게 되었습니다. 이 즐거운 축제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것, 그것을 벌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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