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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Choice 1] <엘리펀트 (Elephant)>
2003-10-05

월드 시네마/ 미국/ 2003년/ 81분/ 감독 구스 반 산트/

오후 5시 대영1관

<엘리펀트>의 첫 시퀀스는 이렇게 시작한다. 덩그러니 선 가로등 위로 빠르게 또 무심하게 흐르는 구름들. 날이 저문다. 아무 일도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어느 하루와 다를 바 없을 듯한 바로 그날에 벌어진 ‘사건’을 구스 반 산트는 <월광 소나타>의 음률을 들려주며 재부검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사회적 비판이나 가슴 아픈 탄식이 없다. 마이클 무어가 소란과 조롱으로 헤집은 미국 ‘컬럼바인 고교 총격사건’의 진상을, 구스 반 산트는 일말의 요동도 없이 모든 정보와 해석을 배제하면서 오로지 ‘시간’ 안에서만 가상화한다.

<엘리펀트>는 총일곱개의 자막으로 나누어 진행되며, 그것은 각각 살해자와 목격자와 희생자가 될 학생들의 이름이다. 카메라는 술 취한 아버지가 모는 자동차를 타고 학교로 들어온 ‘존’으로부터 시작하여, 서로 마주치고, 지나치고, 또 짧은 대화를 나누는 그들을 하염없이 뒤쫓는다. 구스 반 산트는 스테디 캠을 이용하여 인물들을 따르며, 의도적으로 이들을 죽어 떠도는 유령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들에 대한 진술이나 해석이 들어갈 자리도 없이 오로지 ’그 시간’에 대한 다면적인 경험만이 주가 된다. 같은 순간이 한 인물의 시점에서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옮겨가면서 시간은 겹쳐지고, 상황은 반복된다.

평상시처럼 교실에는 학생들이 있고, 여학생들은 잘생긴 남학생에게 호기심을 보이고, 왕따는 여전히 왕따이다. 에릭과 알렉스가 단지 ‘재미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총기를 들고 학교에 찾아와 난사하는 그때까지. 초반부에 존을 스쳤던 에릭과 알렉스는 천천히 학교안을 쏘다니며 한 사람씩 순서없이 사살한다. 구스 반 산트는 비디오게임의 이미지와 <월광 소나타>의 음악을 동시에 사용하며 이 잔혹의 장면을 처리한다. 그리고 다시 하늘. 이들이 왜 총을 들고 비디오 게임을 하듯 학교 친구들과 선생들을 쏴 죽이는지 영화는 대답하지 않는다. 왜 에릭과 알렉스의 관계를 게이친구로 선택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영화가 끝나도록 관객은 아는 바가 없다. 이런 모호함으로 구스 반 산트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마이클 무어가 논리와 과장으로 설득해내는 그 수면아래의 진실에 대해 구스 반 산트는 모를 일이라고 침묵한다. 그게 진짜라고 한다. 이 고요하고 냉기 서린 영화 <엘리펀트>는 <바톤핑크>이래 12년 만에 칸영화제의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글 정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