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BIFF Daily > 8회(2003) > Todays News
[CineChoice 2]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 (Last Life in the Universe)>
2003-10-05

아시아영화의 창/ 타이/ 2003년/ 112분/ 감독 펜엑 라타나루앙/

오후 2시 대영3관

타이 감독 펜엑 라타나루앙의 세 번째 영화 <몬락 트랜지스터>는 신기하지만 약간은 덜떨어진 영화였다. 촌스러울 정도로 시간을 들여 이별의 정한에 정성을 쏟았었다. 그런데 펜엑 라타나루앙은 네 번째 영화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으로 아시아 모더니즘 영화의 영역에 새로이 깃발을 꽂았다. <몬락 트랜지스터>에서 간간이 터져 나왔던 예민한 정감들이 이 영화 안에 세련된 방식으로 스며들어 있다. 한 편의 간격을 두고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타이의 풍토에 믿음을 갖고 있던 감독은 부유하는 듯한 마음으로 서로 다른 곳을 상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말그대로 펜엑은 방콕의 일본인과 오사카를 꿈꾸는 타이인을 주인공삼아 아시아 횡단의 지도를 접어놓는다.

타이에 거주하며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일본인 켄지는 결벽증 환자이고, 언제나 자살충동에 시달린다. 분명하진 않지만, 그는 야쿠자이며, 지금 도피 중이다. 켄지는 도서관에서 만났던 한 여고생의 죽음으로 그녀의 언니 노이를 알게 된다. 그 즈음 그는 그의 형을 죽인 야쿠자를 엉겁결에 살해한다. 켄지는 형을 잃었고, 노이는 동생을 잃었다. 한편 노이는 일본 오사카에 가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고, 켄지는 오사카 출신으로 이곳 방콕에 와 있다. 노이는 어떻게든 오사카에 갈 것이고, 켄지는 누가 뭐라 해도 방콕에 남을 것이다. 둘은 어색한 영어로 서로의 감정을 전한다. 서로의 위치와 형편이 교차되는 두 사람이 노이의 집에서 며칠간 함께 생활한다. 결국 노이는 오사카로 떠나고, 켄지는 경찰에 끌려가게 된다.

펜엑 라투나루앙은 마치 기타노 다케시의 편집과 인물, 차이밍량식 정서가 결합된 듯한 방식으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섬세하게 넘나든다. 틈만 나면 자살을 꿈꾸는 켄지의 상상은 불쑥 불쑥 현실 사이에 끼어든다. 오사카 거리에 서서 네온사인들을 쳐다보고 있는 그 누구의 뒷모습은 끝내 오사카에 도착할 노이의 데자뷔 쇼트들이다.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은 상상과 미래의 얼룩들을 정교한 방식으로 조율하여 현실의 시간속에 배치시킨다. 거기에는 차이밍량이 <거긴 지금 몇시니?>에서 묻고 있는 시공에 대한 사유역시 들어 있다.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은 올해 부산에서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할 아시아 영화 중 한편으로 손색이 없다.

글 정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