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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금지령인가?
김혜리 2003-10-06

아카데미 회원에게 배포하던 관행 금지하자 독립영화계 강한 반발

미국영화협회(MPAA)가, 제작사와 배급사들이 오스카 투표 시즌에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관례적으로 배포해온 시사용 테이프 및 DVD 발송을 전격 금지해 파란이 일고 있다. 지난 9월30일 발표된 ‘금지령’의 명분은 불법복제 근절. MPAA의 잭 발렌티 회장은 매년 약 3만2천개가 우송되는 오스카 경쟁작들의 비디오 카세트와 DVD가 바로 유통되는가 하면 아시아 지역으로 흘러들어가 해적판의 소스가 되고 있다며 결정의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개봉 규모가 작아 시사용 견본 외에는 아카데미 회원에게 접근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비주류영화들은, MPAA의 결정을 생존권 위협으로까지 받아들이고 있다. 오스카 후보 지명과 수상 가능성이 기획과 캐스팅, 판권 수출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아트하우스영화의 특수성 때문이다.

새로운 오스카 캠페인 규칙의 여파가 독립영화 일반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MPAA의 오스카 시사용 테이프 금지령에 구속되는 회사는 MPAA의 회원사인 7개 메이저 스튜디오-디즈니, MGM, 파라마운트, 소니, 이십세기 폭스, 유니버설, 워너 브러더스와 드림웍스, 그리고 뉴라인. 따라서 이번 결정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미라맥스, 폭스 서치라이트, 소니픽처스 클래식스 등 메이저 스튜디오의 예술영화 전문 자회사들이다. 라이온스 게이트나 뉴마켓 같은 100% 독립영화사들은 여전히 시사용 테이프와 DVD를 배포할 수 있다. 일찌감치 극장 개봉을 마친 오스카 경쟁작들도 열외. 이들의 경우, 오스카 시즌에는 이미 가정용 VHS와 DVD가 출시돼 있을 시점이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 오스카로 범위를 좁혀 정리하자면,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처럼 대규모로 개봉하는 주류 스튜디오 영화, <진주 귀고리 소녀> 같은 순수 독립영화사 영화, <씨비스킷>처럼 조기 개봉한 영화가 오스카 후보 지명전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위치를 차지하는 반면,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사진) 같은 메이저 자회사 작품들이 불이익을 당한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파장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MPAA의 발표 직후 메이저 스튜디오의 자회사와 주요 인디영화 프로듀서들은 긴급 대책 강구에 들어갔다. <버라이어티>는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빙햄 레이 대표가 소집한 전례없는 비공개 미팅에 미라맥스의 하비 웨인스타인을 비롯해 포커스, 소니픽처스 클래식, 뉴라인 대표가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독립영화를 후원하는 제작자, 배급사, 영화제 관련인사 모임인 IFP(Independent Feature Project)의 뉴욕지부도 킬러필름의 크리스틴 바천 등 독립제작자들의 뜻을 모아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IFP는 MPAA의 결정이 독립 영화의 제작편수와 다양성을 격감시키고 결국은 주류 영화산업과 관객도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IFP는 저작권의 보호라는 MPAA의 명분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대부분의 무단복제행위가 외국에서 이뤄지고 상영관 내 불법녹화에서 비롯되는 현실에서, 판권보호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아카데미 회원은 가장 가능성 없는 용의자라는 논지. 특히 <소년은 울지 않는다>와 <파 프롬 헤븐>으로 오스카에서 각광받은 바 있는 제작자 크리스틴 바천은, 이번 결정이 인디영화가 오스카를 휩쓰는 최근 현실을 못마땅히 여기고 대중의 이목을 다시 대형 스튜디오 영화에 돌리려는 메이저들의 전략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