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BIFF Daily > 8회(2003) > Todays News
[Talk] 수연아,기억나니? 감독 조근식
2003-10-06

첫 번째 부산영화제가 열릴 때 우린 ‘영화의 미래’인 ‘학생’이었다. 무대뽀와 뗑깡을 열정이라 믿으며 학교를 졸라댄 우리는 결국 전원 ID카드를 받는 행운을 얻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부산으로 내려간 우리는 개떼처럼 몰려다니며 하루에 세 네편씩 영화를 때려보며 문자 그대로 영화의 바다에서 몸부림 쳤다. 그리곤 밤이면 방 하나에 우루르 모여서는 밤새 술기운과 개성과 말싸움을 남발했다. 몇몇은 지쳐쓰러져 아무렇게나 널부러지고 구겨져서 잤다. 어떤 친구는 혼자 밤바다를 거닐기도 했고 어떤 친구는 또 프로그램을 보며 열심히 다음날 스케쥴을 짜기도 했다. 그리곤 날이 밝으면 또 우리는 어김없이 떡진 머리와 퀭한 눈으로 서로의 입냄새에 치를 떨며 눈부신 가을 햇살을 피해 극장의 어둠 속으로 깔깔대며 몰려갔다.

그날들의 며칠째 밤에 우린 얼마 남지 않은 체력과 정신력을 불사르며 서로에게 트집잡고 시비를 걸고 있었다. 이런저런 엇갈린 고집과 감정들이 오가다 어느 순간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 남자들은 시나리오를 잘 쓰거나 단편을 잘 만들거나 연출부나 조감독을 하거나 어느 한 가지만 하면 감독의 기회가 오겠지만 난 아니야. 난 좋은 시나리오에 훌륭한 단편에 몇 작품의 연출부 경력이 있어도 감독의 기회가 올지 말지라구...

너희들과 난 출발점이 다른 거야 알았어?“ 평소 야무지고 똑부러진 태도를 가진 이수연이란 학생이었다. 어떤 대화들이 오갔고 누가 수연이를 화나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허술했던 대다수의 남자들은 적어도 자신이 원인은 아닐거라고 믿으며 침묵 속에 빠른 속도로 잠이들었다.

다음해 우리는 졸업했다. 우리는 몰려다니지 않고 뿔뿔히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았다. 그때 마음속 가득했던 영화에 대한 꿈과 열정과 목마름은 점점 먹고사는 문제로 대체되었다. 무대뽀와 뗑강도 더 이상 먹혀들지 않았고 아무도 우리에게 공짜로 ID카드를 주지도 않았다. 몇몇은 영화를 떠났고, 몇몇은 감독으로 데뷔했으며, 몇몇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리고 그날의 야무진 수연이는 올해 이라는 데뷔작품을 들고 부산에 갔다.... 8년이 흘렀다.조근식/ 감독 <품행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