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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의 <마음의 범죄>
권은주 2003-10-08

실패한 작은 아씨들,재회하다

Crimes of the Heart 1986년 감독 브루스 베레스포드 출연 다이앤 키튼 EBS 10월12일(일) 낮 2시

다이앤 키튼은 배우 겸 감독이다. <지금은 통화중>(2000)은 그녀가 직접 감독한 영화다. <지금은 통화중>은 멕 라이언, 리사 커드로우 등이 출연한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였다. 어느 심술궂은 아버지와 세상 사느라 가족문제에 무심한 자매들의 이야기였던 것. <마음의 범죄>는 어쩌면 <지금은 통화중>의 전편에 해당하는 작품이 될지 모른다. 가까우면서 어느새 서로 마음이 멀어져버린 세 자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니까.

<마음의 범죄>는 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작이다. 그는 호주 출신이다. 호주에서 할리우드로 건너가 연출활동을 했다. 돌이켜보면 할리우드영화의 유연성은 감탄스러운 점이 있다. 미국 영화사 초기부터 할리우드 영화제작사는 해외 연출자들을 영입하길 꺼리지 않았다. 히치콕이나 프리츠 랑 등 적지 않은 감독들이 할리우드로 주소를 옮겨 작업했다. 미국영화가 타자의 문화를 수용하고 흡수하는 능력은 놀라운 것이다. 1980년대 이후 할리우드는 독립영화와 소수인종, 그리고 해외 감독을 계속 주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같은 케이스의 호주 출신인 영화인으로는 피터 위어, 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이 대표적이다.

<마음의 범죄>는 베스 헨리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레니는 할아버지를 간호하느라 결혼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노처녀로 늙어가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베이브는 집안을 위해 자신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혼을 했다. 다른 자매와 상반되게 맥은 가부장제가 정해준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고 가벼운 행동을 일삼는다. 레니의 생일을 맞아, 가수지망생으로 꿈을 좇아 고향을 떠났던 맥과 남편을 총으로 쏜 탓에 유치장에 갔던 베이브가 레니의 집에 모이게 된다. 어머니의 자살은 세 자매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 이들을 괴롭힌다. 재회한 세 자매는 각자 처한 상황과 집안문제를 합리적으로 처리해보려고 하지만 간단치 않다. 영화에 나오는 레니 등의 자매는 하나같이 실패자들이다. 결혼에 실패했고 남자와의 연애에 실패했으며 꿈을 온전히 이루지도 못했다. 누군가는 생일에 혼자서 촛불을 끄면서 스스로 뇌까린다. “생일 축하해”라고. 철저하게 외로운 삶들이다. 이 여성들이 함께 시간을 나누면서 심리적 역경을 극복하는 것이 이 영화의 서사다.

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은 독특한 스타일로 드라마를 구성한다. 영화 속 시공간은 급속하게 변하고 인물의 기억에 따라 자유롭게 달라진다. 세 자매의 현재는, 그들의 과거와 극적으로 교차되곤 한다. 영화의 극단적 앵글과 편집은 여느 할리우드영화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은 실험영화를 연상케 하는 급진적 연출을 부드러운 드라마의 줄기에 접목시켰다. 결과는 좋다. 다이앤 키튼, 제시카 랭과 시시 스페이섹 등 여배우들은 근사한 연기 앙상블을 과시한다. 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은 이후 한 미망인과 흑인 운전사의 갈등과 우정을 담은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89)에서 더욱 세련된 드라마를 빚어내는 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