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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
김규항(출판인) 2003-10-08

일산 중산, 파주 운정, 용인 기흥, 다시 파주 교하…. 지난 몇해 동안 내가 산 곳들이다. 남보다 게으르게 살지 않았지만 일가친척을 다 뒤져 당장 돈 500만원 빌릴 데 없는 알량한 배경을 가진 내가 그런 형편인 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국은 단지 정직하게 일한다고 집을 마련하거나 돈을 모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나는 사회주의자로서 예수를 좇는 사람으로서 내 그런 형편에 만족한다. 아내는 나와 열세해 동안 살면서 열세번 이사를 다녔다. 유랑 생활은 아무래도 여자쪽을 더 고단하게 만들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는다. 남편을 공경하는 봉건적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집이야 오르면 다른 데로 옮기면 되고 돈이야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할 정도면 되지만, 같이 사는 인간이 돈이나 명예 따위에 자존심을 내주는 꼴은 볼 수 없어서다. 내가 개혁과 진보의 경계를 줄타기하는 잘 나가는 지식상품의 행보를 접을 때도 그는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이었다.

아내는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대화할 때 아내는 담배를 피우고 나는 술을 마시다가 얼마 전 그가 담배를 끊고 나선 함께 술을 마신다. 아파트나 땅 따위가 대화 소재가 되는 일은 없다. 그런 걸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그런 걸 할 만한 형편이 되어본 적이 없다. 대화는 대개 아이들 문제에 대한 토론이거나 서로의 일에 대한 토론이다. 열살 먹은 김단에게 일찌감치 ‘여성 의식’을 심어준 것 역시 토론의 산물이었다.

초고를 쓰면 대개 아내에게 읽히곤 한다. 뭘 쓰는가에 대해 그는 참견하지 않지만 배운 놈들이나 알아먹을 문장이나 여성에 대한 편견을 담은 문장은 냉정하게 골라낸다. 그런 검열이 필화의 방어막은 아니다. 언젠가 ‘그 페미니즘’이라는 글의 초고를 읽고 그는 말했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큰 소란이 날 테니 알아서 하라.” 물론 나는 알아서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아내는 혼자 있길 좋아하는 내 습성을 불편해했다. 미안해진 나는 내 습성을 고치려고 노력해왔다. 그 덕에 얼마 전 동네 친구들을 얻게 되었다. 나는 짬이 날 때마다 그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교하 숲에서 자전거를 탄다. 그들은 살아온 배경도 하는 일도 제각각이지만 아직 소년의 눈빛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아내들 역시 소녀의 눈빛을 잃지 않았다.

나는 글 씁네 예술 합네 하는 인간들이 몸으로 땀흘려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서 제가 세상의 배후라도 되는 양 허풍떠는 일을 죽도록 경멸해왔다. 나는 동네 친구들에게 내가 단이와 건이의 아빠이자 모자 쓰고 운동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길 바랐다. 나는 동네 친구들에게 내가 사회주의자라는 사실이 내 알량한 허명이나 내 글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만 전해지길 바랐다.

얼마 전 그들은 인터넷에 ‘물푸레마을’이라는 카페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나를 ‘추장’이라 부른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나를 만나 제 인생이 달라지고 있다고 그곳에 적어놓았다. 그들은 나를 참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변화하는 중이다. 물론 세상에는 나를 추장이라 불러줄 사람보다는 딱하게 여길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나는 안다. 그게 오늘 세상의 가치이고 그런 세상을 변화하는 일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 여겨진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작은 변화에서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나는 풍요롭게 살고 있다.김규항/ 출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