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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1] “죽어가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2003-10-08

<불견> 감독, <안녕, 용문객잔> 배우 이강생

언제나 “스승이자 아버지같은”차이밍량과 나란히 부산을 찾았던 이강생. 그러나 올해 그의 옆엔 차이밍량은 없다. 대신 그 자리는 자신의 감독데뷔작 <불견>이 든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제 그의 동그란 코선과 아이같이 말간 얼굴, 강아지 같은 눈망울에 대한 기술은 그만 두어야 할것 같다. 차이밍량이 언젠가 말했듯이 “차갑고 무심한, 현대인의 냉소가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감독’ 이강생에게서는 이제 무언가 적극적이고 뜨거운 기운이 돌고 있었다.

공원에서 손자를 잃어버린 할머니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잃어버린 소년의 이야기, <불견>은 본래 차이밍량과 이강생이 옴니버스형식으로 하나의 장편을 찍자는 프로젝트에서 나왔다. 그러나 <안녕, 용문객잔>을 찍은 차이밍량은 그것을 온전한 한편의 장편으로 만들길 원했고 이강생 역시 “보충촬영을 통해” 또 다른 장편을 완성시켰다. 결국 두편의 장편영화로 세상에 나온 <불견>과 <안녕, 용문객잔>은 “사라짐의 슬픔”을 담은 이란성 쌍둥이 같은 영화다. <불견>은 실종된 사람들을 통해 인간관계의 소원함을, <안녕, 용문객잔>은 과거 번화했던 한 극장이 몰락하고 사라져 가는 것을 담고 있다. <불견> 속 두 이야기엔 이강생 감독의 가족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병석에 누워서 외롭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서 할아버지와 소년의 설정을 생각해 냈고 실수로 손자를 다치게 만든 어머니가, 아이가 이렇게 되었으니 니네 형이 나에게 뭐라고 할꺼다, 라고 자책하는 것을 보며 “만약 그 아이가 영영 사라져 버렸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에서 손자를 잃어버린 할머니의 이야기를 착안하게 되었다고.

<불견>엔 유난히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사스 때문에 대만의 모든 병원들이 격리수용소로 변했고 사람들은 감히 공공장소에 나가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들을 보며 죽어가는, 사라져가는 것들 그리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단절을 느꼈다”는 이강생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의 제목, ‘불견’(不見)역시 이런 배경에서 나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영화를 찍는 내내 어릴 적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는 영화 속 소년의 뒷모습엔 불법오락실앞에서 차이밍량과 처음 조우했던 어린 이강생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십여년의 시간이 흘러 그 불법오락실소년은 이제 감독이 되었다. 세월은 그로부터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만든 동시에 그만큼 많은 것을 선사했음도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