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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Choice 1] <아카시아(Acacia)>

폐막작/ 한국/ 2003년/ 104분

감독 박기형/ 10월10일 오후 7시 야외상영관

<여고괴담><비밀>에 이어 세 번째 영화 <아카시아>에서도 박기형 감독은 기성세대의 위선과 허영을 공격한다. <여고괴담>이 학교와 입시제도에 질식되는 아이들을, <비밀>이 원조교제와 이율배반적 윤리의식에 상처받는 아이들을 그렸다면 <아카시아>에서 아이는 혈연에 대한 집착으로 궁지에 몰린다. 아이를 보호하겠다는 어른들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결국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고 마는 것이다. 박기형 감독의 영화들이 공포영화의 자장권에 들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카시아>는 지극히 평온해 보이는 상류층 가정이 한 아이를 입양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그림 같은 전원주택이 모여 있는 빌라촌,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과 직물공예가인 아내는 시아버지와 함께 겉보기에 아무 문제없는 생활을 누리고 있다. 아이가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완벽한 평화’인 셈이다. 어느 날 남편이 입양을 제안하고 부부는 보육원에서 ‘진성’이라는 이름의 6살난 사내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언제나 나무가 있는 그림을 그리는 진성은 집 마당에 서 있는 죽은 아카시아 나무를 좋아하며 나무와 대화하고 나무에 올라가 시간을 보내곤 한다. 죽은 어머니가 나무가 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임신을 하면서 가족은 위기를 맞게 된다. 여자에게 애낳는 부적을 전해줬던 친정어머니는 진성이를 피하고 여자는 동생을 질투하는 진성이에게 화를 낸다. 가족의 완벽함을 위해 데려온 진성이가 어느 순간부터 불필요한 짐이 되고만 것이다.

<아카시아>는 공포영화이기 전에 매우 예민한 영화라는 점에서 관객을 긴장시킨다. 영화는 죽은 아카시아 나무 한 그루만으로 평온한 가족의 모습에 묘한 불안을 조성한다. 진성이가 그리는 나무 그림만으로 초조함을 만들고 이 집을 바라보는 소녀의 시선만으로 불운의 전조를 드리운다. 피칠갑을 하는 살인마나 머리 풀어헤친 원귀가 나오지는 않지만 그런 사소함이 신경을 긁고 소름을 돋운다.

박기형 감독은 붉은 실이 아이의 몸을 휘감는 장면이나 아이의 갈라진 피부에서 나무가 튀어나오는 장면처럼 몇 가지 초현실적 이미지를 동원하지만 공포의 근원은 분명 현실에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아카시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있다. 극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보여주는 대조적 양상은 인간의 인자하고 평온한 가면 뒤에 있는 추악하고 무서운 얼굴을 보여준다. 감독은 그것이야말로 ‘진짜 공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남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