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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찍은 사진의 역사,세계 사진사 32장면 (1826∼1959)
권은주 2003-10-16

요코하마. 근대까지만 해도 보잘것없는 한촌이었던 이곳은 일본이 서구를 향하여 문을 활짝 열면서 개항장이 되어 항구도시로 탈바꿈했다. 도쿄에서도 가까운 이 아름다운 도시에는 세계 유수의 사진 컬렉션을 갖춘 미술관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는데, 매번 이곳을 찾을 때마다 근대도시와 근대예술인 사진의 만남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진은 영화와 더불어 우리가 기원을 아는 몇 안 되는 예술 장르이다. 누가 최초로 동굴벽화를 그렸는지 아니면 대리석을 다듬어 인체를 조각하기 시작했는지 우리는 도저히 알 수 없다. 그저 오래되었거니 여기며 미술사를 통해 찬란한 미의 역사에 감탄한다. 그렇지만 그에 비하면 역사가 턱없이 짧은 사진이나 영화에 대해서는 어느 날부터 카메라와 영사기가 하늘에서 툭 하고 우리 손으로 떨어진 것인 양 생각한다.

그리 생각하는 독자들은 이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당황하게 된다. 1826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진의 젊은 역사가 왜 그리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말이다. 여덟 시간이 넘는 노출을 주어야 했던 인류 최초의 사진을 발명한 니엡스와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모든 공적을 자신에게 돌려 프랑스 정부로부터 종신연금을 받은 다게르. 그 둘은 예술사에 숱하게 나오는 어떤 사조(思潮)의 창시자와 정작 이로 인하여 유명하게 된 거장과의 관계를 떠올린다. 그런가 하면 ‘명함판 사진’을 고안하여 떼돈을 벌었던 디스데리 이야기에서는 상업예술의 한 전형을 엿본다. 말은 과연 뛰는 순간에 네발 모두가 공중에 떠 있는 순간이 있느냐는 당대의 열띤 논쟁을 사진으로 검증했던 머이브리지와 몸속 뼈를 찍어내는 X-레이의 발명자 뢴트겐에서는 과학사와 사진사가 교차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어쩌면 초창기 사진사의 흥미진진한 뒷이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른바 아직까지도 범죄자 수사 및 분류자료로 활용되는, 사진을 통한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을 고안한 알퐁스 베르티옹에서는 사진이 인간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한다. 사진이 정치와 혁명과 결부된 것인데, 사진가이자 정치가였던 막심 뒤 캉의 파리 코뮌의 회상을 들어보자.

“판화상이나 문구상들의 진열창은 코뮌 위원, 시 대표자, 군 지도자, 한마디로 반란군의 수령들이 종종 아주 우스꽝스런 복장을 하고 찍은 사진들로 뒤덮였다. 그들은 뽐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들은 말단 배우처럼 번쩍이는 옷을 입고, 출세한 그들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했다. 그것은 아주 심한 경거망동이었다. 이러한 사진이 모두 파리에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많은 사진이 베르사유로 넘어갔고, 뒤에는 몸을 숨긴 많은 죄인들과 불운한 사람들을 색출하는 데 쓰였다. 아마도 자신을 스스로 공개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혁명의 흥분으로 찍었던 사진이 혁명을 단죄하는 증거로 사용되었다는 대목에서는 민주화 운동 시절에 비슷한 경험을- 주로 사진으로 찍힌 경우였지만- 가진 우리에게는 남달리 읽힌다. 이렇게 1826년 사진의 발명에서부터 1955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기념비적 사진전 <인간 가족>(The Family of Man)에 이르는 130년간의 세계 사진사를 32장의 사진으로 정리한 이 책은, 유달리 두꺼워 보이고 무겁게 느껴진다. 마냥 젊게만 여겨지는 사진의 역사가 그리 가볍지만도 않고 많은 사연과 애환이 담겨 있음을 그리고 미학적 논쟁거리가 산적해 있음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다게르가 찍은 <탕플 대로의 광경>에는 움직이는 사물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오랜 노출이 필요했던 사정으로 정지되어 있는 건물이나 가로수만 찍혀서 나온다. 마치 유령의 도시처럼 느껴지는 이 사진에서 나는, 우리가 간과하지 못했던 사진사의 역동적인 순간들을 떠올린다.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 속에 언제나 진실은 숨어 있는 법이다. 김장호/ 도상학 연구가 alhaj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