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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권은주 2003-11-06

“멸공!” <고래가 그랬어> 창간호 나오고 어느 날 자정 넘어 조 중사가 전화를 했다. ‘멸공’은 얼치기 빨갱이인 나에 대한 그의 장난 섞인 지지고 ‘중사’는 그가 스스로 달아준 계급이다. 그는 내가 ‘브로커’라고 놀릴 만큼 출판이나 회사 경영에 경험이 많다. 그는 내가 나름의 원칙과 명분을 주식회사라는 현실적 틀 속에서 실현해나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나는 노련하고 듬직한 중사를 둔 셈이다. 조 중사는 이따금 자정이 넘어 전화한다. 대개 나에 대한 염려를 주정이라는 형식으로 드러내곤 한다. “힘들면 힘들다고 해요, 씨바”, “솔직히 무슨 일 있는 거 모를 줄 알아요” 하는 것이다. “일은 무슨 일, 씨발놈아.” 그럴 때면 나도 편안해져 욕을 한마디 한다. “왜 애들처럼 욕을 하고 그래요.” 내가 웃음을 터트리고 자정 넘어 싱거운 통화는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은 목소리가 유난히 쾌활하다. “씨바, 기분 좋네요. 정말.” “넌 술 먹으면 기분 좋잖아.” “씨바, 그게 아니라니까요.” “아니긴 뭐가 아닌데.” “지난번에 설문조사 한다고 ㅎ초등학교에 창간호 보냈잖아요.” “그랬지.” “6학년 한반 아이들 전부가 책을 읽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한 아이 엄마가 그 반 행사 때 아이들 먹으라고 빅맥 세트를 숫자대로 가져왔나봐요.” “그런데.” “한명도 안 먹어버렸대요.” “정말이야?” “정말이니까 이 시간에 전화한 거 아닙니까.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맥도날드 먹으면 안 돼’라고 외치니까 모든 아이들이 ‘뚱보 된다’, ‘맥도날드는 나쁘다’ 등등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동조했답니다.” “저런.” “교사가 햄버거 사온 아이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니까 민망해하면서 몽땅 싸들고 돌아갔대요.” “그것 봐라, 애들은 된다니까.” “그러게 말이에요. 기분 좋네요. 정말.”

대부분 만화로 이루어진 <고래가 그랬어>엔 짧은 글로 된 막간 꼭지가 몇개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아이들이 환호하는 거대 기업들의 속을 얼핏 보여주는 ‘나쁜 장사꾼들’이다. 그 첫 번째는 맥도날드였고 아이들은 그걸 읽었던 것이다. 설문조사는 계층과 지역으로 나누어 선정한 몇몇 학교에서 진행했다. ㅎ초등학교는 그 가운데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경우였다. 말하자면 부자 아비를 둔, 매우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그 학교에 책을 보낸 다음날엔 한 아이 어머니가 선생에게 항의를 해왔다. “이런 걸 읽고 아이들이 미국에 대해 나쁜 생각을 가지면 책임질 거예요?”

설문 결과는 나와 조 중사를 비롯한 동료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전태일의 일생을 그린 ‘태일이’가 가장 재미있는 만화로 꼽힌 건 작가인 최호철조차 믿지 않을 만큼 뜻밖의 일이었다. 반면에 내용을 떠나 재미와 즐거움을 목적으로 집어넣은 다른 꼭지는 ‘어른식 키치’로 판명났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성과는 설문 결과가 계층이나 지역 따위로 구분되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부잣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와 가난한 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가 별다르지 않고 도시 아이들이 싫어하는 꼭지와 시골 아이들이 싫어하는 꼭지가 별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제 아비의 계급이나 지역 따위에 아직은 제 정신을 앗기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빅맥 세트를 거부한 부잣집 아이들처럼 아이들은 제가 스스로 깨달은 것은 삶에 반영한다. 아이라 불리는 인간들이 어른이라 불리는 인간들과 가장 다른 점은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혹은 “세상이 다 그런 거지”라는 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혹은 “세상이 다 그런 거지”라는 말이야말로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는 한국인들의 절대적 이념이다. 지성이나 예술 혹은 종교 따위는 그 절대적 이념 아래 무수한 장식물로 존재한다. 한국인들, 한국의 어른들에게 더이상 희망이 없는 건 그래서다.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한국의 유일한 희망이다. 한국에서 아이들은 삶의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남은 유일한 인간들이다. 김규항/ 출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