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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이그재큐티브 프로듀서 필립 리
심은하 2003-11-12

국제적 프로젝트를 위한 솔루션

아무리 ‘맛이 갔다’고 하지만, 홍콩 영화계는 아직 대단한 구석이 있다. ‘영화 기능올림픽이 있다면 전 종목을 휩쓸’ 숙련된 스탭이나 유덕화, 양조위, 장만옥 등 세계적 스타의 존재도 그런 느낌을 주지만,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엮어내는 능력은 아시아권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여기, 필립 리 또한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AFI(미국영화협회)를 나와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뒤 첸카이거의 <시황제 암살사건>, 리안의 <와호장룡>, 장이모의 <영웅> 등에서 프로듀서를 맡았고, <툼레이더2> <스파이게임> 등의 홍콩 로케이션을 책임진 그는 할리우드와 소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시아 영화인으로 손꼽힌다.

그가 최근 한국을 찾은 이유는 또 하나의 국제적 프로젝트를 위해서다. 곽재용 감독이 연출하고 전지현, 장혁이 출연하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그것. 홍콩의 빌 콩이 투자하는 이 영화에서 그는 이그재큐티브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본디 이그재큐티브 프로듀서란 여러 종류지만, 그가 맡은 구체적인 업무는 ‘완성보증보험’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일이다.

완성보증보험(completion bond)이란 말 그대로 영화의 완성을 보장하는 증서. 프로듀서가 보증보험회사에 시나리오와 제작계획을 제출해 보증서를 받고, 이를 통해 은행권에서 제작비를 대출받는 영화 파이낸싱의 한 방법이다. 완성보증보험은 할리우드에서는 일반적인 관행으로, 큰 제작비가 필요한 프로젝트에서 주로 사용된다. 완성보증보험 업무에서 아시아권의 일인자로 꼽히는 필립 리는 <와호장룡> <영웅>에서도 이 업무를 담당했다.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영화나 국제적인 프로젝트에서 이 파이낸싱 방법을 사용하면 유리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영화현장을 많이 나간 탓에 5분만 있어봐도 그 분위기를 알 수 있는데, <내 여자친구…>는 에너지와 활기가 넘치고, 감독과 프로듀서의 리더십이 강력했다”고 현장을 찾은 느낌을 말했다. 그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은 빌 콩과의 친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를 위해 함께하고픈” 그의 소망도 동기를 부여했다.

<내 여자친구…>는 프리랜서로 참여하는 것이지만, 그는 옥토버필름이라는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홍콩을 중심으로 중국, 한국 등에 거점을 두고 있는 이 회사는 영화제작을 주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광고, 뮤직비디오, 기업홍보영화 등을 통해 지속적인 수익을 만들고 있다. 베이징 지사의 대표는 티엔주앙주앙 감독이 맡고 있기도 하다. 최근 창립작인 시아동 감독의 영화 <그대와 함께한 여름>을 제작 중인 그는 수지오 감독의 <오후 4:30분의 우화>에 한국 가수 박지윤을 캐스팅하려는 등 한국과 좀더 많은 일을 하려 한다. “한국은 우선 아시아 시장에서 보편적으로 먹힐 영화를 기획해야 한다. 그게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등 세계로 뻗어나가는 길”이라고 그는 조언했다. 글 문석·사진 오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