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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존립근거 위한 딴죽걸기

‘삭제 선호증’이라고 불러야 할까, ‘존립 근거를 확인하기 위한 안간힘’으로 봐야 할까.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영화등급소위원회(의장 정홍택)가 <킬 빌>(사진)에 칼을 대게 하고서야 ‘18세 관람가’를 내주더니,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 이승희)는 <여섯개의 시선>에서 정재은 감독의 <그 남자의 사정>을 제외시키고 상영해야 한다고 11월14일 주장하고 나섰다.

먼저 영상물등급위원회. 정홍택 의장은 애초 <킬 빌>에 제한상영 결정을 내린 것은 “특정장면이 문제라기보다 전체적인 잔혹성이 문제”라고 했다. 등급위가 수입추천을 무난히 내줘서 안심하고 있던 수입사는 제한상영이라는 ‘기습’을 받고 부랴부랴 일부를 잘라 다시 심의를 요청했다. 그 분량은 불과 12초. 일부 프레임을 잘라낸 것인데, 이것으로 <킬 빌>의 ‘잔혹성’이 사라졌는지는 의문이다. 12초든 12분이든 훼손이긴 마찬가지이지만, 이건 일종의 성의 표시처럼 보인다. 언제든 발목을 잡을 수 있는 힘이 여전하다는 걸 만방에 확인시켜줬고, 저쪽에선 성의를 보였으니 이제 상영을 해도 좋다, 라는 식의.

청소년보호위원회(이하 청보위)의 처신은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청보위는 <그 남자의 사정>이 합헌 결정까지 난 성범죄자의 신상공개제도를 문제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단 이 영화는 신상공개제도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는다. ‘제작사’인 국가인권위원회의 남규선 공보담당관은 “단순히 고문받지 않을 권리뿐 아니라 프라이버시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인권은 어디까지 보호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라며 “접근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 청보위의 요청을 고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청보위는 여태껏 조용히 있다가 삭제 요청을 하필 개봉일에, 그것도 보도자료 배포와 동시에 인권위에 팩스로 보냈다.이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