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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빌·올드보이·노보…‘골라보는 재미’
2003-11-21

영화팬들에겐 행복한 주말이다. 9편에 이르는 21일의 개봉작은 국적, 장르, 연출 스타일 등 어느 면에서 봐도 다양하고, 절반 이상이 완성도도 높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두편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1편(사진)과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 두 영화 모두 ‘한 스타일 하는’ 데에 더해, 이야기 구조가 관습적이지 않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런 저런 사연 생략하고 바로 복수활극으로 치닫는 <킬빌>의 이야기는 너무 단순하고, <올드 보이>는 장르영화의 흔한 허구적 장치로 시작해 놓고는 뜬금없을 만큼 비장하고 진지한 사연을 들이민다. 두편 모두 관습적인 영화를 선호하는 관객들에겐 어딘가 빈 듯한 느낌을 줄지도 모르지만, 영화광들에겐 거꾸로 원하는 것들이 넘쳐나는 영화가 될 것같다. <킬빌>에는 이소룡, 강다위, 일본 사무라이영화, 마카로니 웨스턴이 한데 어울리는 액션 버라이어티쇼가, <올드 보이>에는 보랏빛 누아르의 독특한 화면과 최민식의 열연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폭력, 피비린내 같은 것이 싫은 이들에겐 앞의 두편 못지 않은 훌륭한 대체 메뉴가 마련돼 있다. 프랑스 장 피에르 리모쟁 감독의 <노보>는 팬터지와 멜로가 조금씩 섞이면서 감미로움을 더하는 에로틱한 영화다. 몇시간, 짧게는 몇분 단위로 기억을 잃어버리는 남자 옆에 세 여자가 몰린다. 세 여자가 남자에게 원하는 것들의 방향이 조금씩 다르고, 여기서 영화는 사랑과 기억의 관계에 관한 단상을 덤으로 던진다. 테크노 음악의 빠른 리듬을 타는 경쾌한 편집, 남녀 주인공의 섹시함이 매력을 더한다. 열정적인 삶을 살다 간 멕시코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의 생애를 다룬 <프리다>는, 영화적 각색을 떠나 파란만은 칼로의 삶 자체를 보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셀마 헤이엑, 에드워드 노튼,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배역도 화려하다.

좀더 세게 양념친 감동을 원한다면 일본영화 <사토라레>와 30년대 미국 대공황기의 경주마 이야기 <씨비스킷>이 있다. <씨비스킷>은 힘든 이들이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실화에 기초한 영화이다. <사토라레>는 ‘자기의 생각이 남에게 다 들리는’ 희귀한 사람들을 설정해 놓고서 그 위에 가족, 휴먼드라마를 꾹꾹 눌러댄다. 감동이 있지만 조미료 맛이 심한 건 어쩔 수 없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