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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이 낳은 퓨전,레이첼스 내한공연
이다혜 2003-11-24

미국 루이빌 출신의 인디 뮤지션인 제이슨 노블과 줄리아드 출신의 비올라 주자 크리스천 프레데릭슨이 피아노를 치는 레이첼 그라임스를 만나 결성된 레이첼스는 기본적으로 피아노와 첼로, 비올라의 3중주에 기타, 베이스, 드럼, 신시사이저 등 밴드 중심의 음악에서 흔히 쓰이는 악기들을 뒤섞어 운용한다. 레이첼스의 음악을 들으면 토토이즈나 바도 폰드 같은 포스트록 계열의 감수성으로 에릭 사티풍의 선율을 다시 써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쨌든 그들의 음악 역시 일종의 ‘퓨전’이다. ‘일종의’ 퓨전이라고 말한 이유는, 글 끝에 나온다.

이들의 음악은 두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나는 로큰롤 자체의 해체이다. 1990년대 들어 미국 록의 가장 진보적인 사명의 하나는 바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확고해진 록이라는 개념 자체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해체하는 일이었다. 이를 수행한 뮤지션들이 바로 포스트 록 계열의 음악을 구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음악은 해면체 같은 리듬의 이완과 미니멀리즘적인 단순함을 통해 로큰롤의 남근적 드라이브감을 해체시키는 방식을 쓴다. 북유럽의 시거 로즈 같은 밴드의 음악이 가지는 그 비슷한 면과는 또 다르다. 시거 로즈의 음악이 끝없이 지속되는 밤의 드라마틱한 우울함을 표현한 데 비해 포스트 록은 너무나 역사적 사명에 투철한 것이 눈에 보인다. 아무튼 포스트 록은 역사적으로는 중요할지 몰라도 귀에는 조금 지루하게 들린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의 상황과 맞물린 ‘로큰롤’이 그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레이첼스를 포함한 포스트 록 밴드들은 자기 땅에서 자기 로큰롤이 지금 당장 할 수 있고 또 해내야만 하는 어떤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레이첼스를 클래시컬한 실내음악에 록적인 변형을 가하고 있는 밴드라는 관점을 취하는 일이 가능하다. 물론 록과 클래식을 접목시키는 사례는 허다하다. 베를린 필하모니와 스콜피온즈가 <허리케인처럼 너를 몰아칠 거야>(Rock You Like a Hurricane)를 협연하는 마당이다. 그런데 레이첼스의 방식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베를린 필과 스콜피온즈의 만남이 보편적이고 규정적인 남근성의 불꽃튀는 드라이브감을 통해 대중에 시원한 사정감을 선사하는 반면 레이첼스의 음악은 끝내 그것을 유보시킨다. 이들은 위압적인 어떤 몰아침을 내성적으로 해체한다. 그렇지만 이들이 구사하는 화성은 단순하고 순진하여 서양 고전음악이 내달린 현대음악적 모험의 길을 좇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단지 클래식적 바탕을 ‘도입’하여 그것을 다른 목적을 위해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핸드 라이팅>(1995), <셀레노그라피>(1999), 최신작 <시스템스/레이어즈>(2003)를 포함, 네장의 정규 앨범과 테크노 밴드 마트모스와 함께 만든 스플릿 앨범 등을 낸 레이첼스는 우리에게는 화가 에곤 실레에 관한 무용공연을 위해 지어졌다는 <에곤 실레를 위한 음악>(1996)이라는 앨범을 통해 많이 각인되어 있는 편이다. 그런데 앨범들을 들으면서 이들이 ‘퓨전’, 즉 클래식과 록의 융합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균열’을 상처 드러내듯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현악기와 드럼 비트와 몽환적인 앰비언트 노이즈들이 그저 한데 들릴 뿐이다. 마치 길거리에서 조금 우아한 몽상을 하는 사람의 머릿속과 그 바깥의 사운드를 한꺼번에 들려주는 듯한 느낌이다. 내게는 오히려 이 점이 더 흥미롭게 들린다. 꼭 융합시키려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운드와 생각을 드러내는 일 말이다.

이러한 ‘균열’을 확인해볼 자리가 마련되는 모양이다. 이들이 내한하여 2003년 11월25일 오후 7시30분에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공연을 한다. 나도 가서, 음악이 처한 서로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너와 나는 다른지 한번 확인해볼 작정이다. 실은 레이첼스 같은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독특한 태도가 필요한데, 이처럼 상황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퓨전, 퓨전, 하면서 ‘화합’의 모티브들을 찾는 데 지나치게 골몰한 나머지 분열과 균열, 찢어짐과 깨짐의 지점을 바라볼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 우리의 어떤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