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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 프로젝트 <비밀과 거짓말> 촬영현장
박혜명 2003-11-26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서울의 어느 곳보다도 이곳은 가을 같다. 지난 11월17일 월요일 아침, 붉은 낙엽이 두텁게 덮인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는 민규동 감독의 디지털 단편 <비밀과 거짓말> 촬영팀이 8시부터 나와 있었다. 디지털로 촬영하는 5분짜리 단편이다보니 현장이 아주 간소하다. 스탭들은 스무명도 채 되지 않고, 작고 가벼운 카메라가 스탭 어깨에 얹혀 촬영장소를 빠르게 옮겨다닌다. 심지어 나무도 타고, 현장에서 배터리를 충전해가며 동원되는 놀라운 현장적응력을 보인다. 특별한 콘티없이 촬영을 진행하는 민규동 감독은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하는 <품행제로>의 조근식 감독에게 말로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연기를 주문한다.

<비밀과 거짓말>은 결혼을 앞둔 스무살 청년의 에피소드. 청년과 약혼녀, 장인, 장모, 네 사람이 서로 주고받은 비밀과 거짓말을 담고 있다. 제목이 제목인 만큼 비밀과 거짓말의 정체를 미리 알면 당연히 김빠질 일. 이날의 현장에서는 주인공 남자가 약혼녀 될 여자를 처음 마주치게 되는 순간과 다른 친구들의 스무살 인생들을 짤막하게 펼쳐 보였다. 1인 4역을 맡은 주인공 류승범이 헬멧 쓰고 오토바이를 타더니 어느새 짜장면집 배달부로, 군복 차림의 예비역에서 다시 붉은 띠를 두른 열혈 대학생으로 잽싸게 캐릭터를 오간다. “내 약혼녀의 엄마가 나를 덮쳤다”라는 카피 같은 문구로 영화를 표현한 민규동 감독은 “불륜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평화로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 서로 비밀을 만들고 거짓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재미있게 그린 영화”라고 풀어 설명한다. 이 단편은 한국영화아카데미 20주년 기념 디지털 단편 프로젝트 ‘이공’(異共)의 일부다. 아카데미 출신 감독 스무명이 ‘20’을 주제로 만든 5분 내외의 디지털 단편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한 것. 이 스무 조각의 모자이크는 오는 12월19일 영화아카데미 20주년기념영화제 ‘성인식’에서 개막작으로 선보인다. 사진 오계옥·글 박혜명

♣ 디지털카메라의 기동성은 대단하다. 카메라를 가뿐히 들고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은 <밀애>를 찍은 촬영감독 권혁준. (왼쪽사진)♣ 이날의 디지털카메라는 현장모니터 기능도 담당했다. 현장모니터기를 동원 못할 만큼 사정이 궁해서가 아니라 충전이 안 돼서 쓰지 못했다는 게 촬영부의 설명이다.(오른쪽 사진)

“한 친구는요…”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이 단편에서 류승범은 스무살 또래의 세 친구를 소개한다. (이 세 친구는 모두 류승범 자신이 연기했다)♣ 그중 한명은 짜장면 배달부. 원조교제 커플 뒤에서 심술궂은 훼방을 놓는다.(왼쪽사진)♣ 또 한 친구는 “반독재! 반민주!”식의 엉터리 구호를 외치며 데모 준비 중인 대학생이다. 옆에서 열심히 화염병 제작 중인 선배가 조근식 감독. 조근식 감독도 1인3역을 맡아 제법 바쁘게 돌아다녔다.(오른쪽 사진)

♣ 류승범의 마지막 친구는 뻔뻔하게 노상방뇨를 갈기는 예비역이다(왼쪽사진)♣ 민규동 감독은 ‘이공’ 프로젝트의 여타 감독들과 달리 이번 단편작업의 기술스탭을 비(非)아카데미 출신들로 구성했다. “모르는 친구들과 한번 작업해보고 싶어서 그렇게 꾸렸다.” 아트디렉터의 소개로 만난 권혁준 촬영감독과의 작업에 대해서는 “콘티를 촬영감독과 같이 상의하면서 정돈하기는 처음인데, 같이 해보니까 리허설을 많이 안 해도 되고 편하더라”고 말했다.(오른쪽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