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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오구> ‘죽음과 노니는 굿’ 무대 떠나 스크린속으로
2003-11-28

이윤택 감독 데뷔작 ‘오구’

〈축제〉나 〈학생부군신위〉는 한국의 전통 장례식을 다룬 한국 영화였다. 그럼에도 이 영화들의 장례식에선 오리엔탈리즘의 냄새가 났다. 기이하고 신비하게 보인다고 할까. 〈오구〉의 장례식이나, 장례식에 앞서 치러지는 산오구굿에서는 그런 냄새가 안 맡아진다. 요즘에 보기 힘든, 거의 잊혀져간 풍경임은 앞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지만, 〈오구〉의 제의들은 새롭긴 하되 신기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냥 그 안에 들어가 같이 웃고 울면서 놀고 싶어진다.

그동안 여러 차례 공연되면서 270만명의 관객을 모은 동명의 연극을, 연극연출가 이윤택씨가 메가폰을 잡고 스크린으로 옮긴 〈오구〉는 산오구굿과 장례식 등 제의 그 자체가 주인공인 특이한 영화다. 10여년 만에 마을에서 벌어지는 굿판에 반대하는 이들과의 갈등, 무당 딸 미연(이재은)이 미혼모가 된 끔찍한 사연 등의 이야기가 있지만 이건 제의의 진행을 돕는 보조장치처럼 보인다. 황씨 할매(강부자)가 저승사자가 찾아온 꿈을 꾸고선, 편안한 마음으로 저승에 갈 수 있도록 굿을 해달라고 무당을 찾아가고, 굿판이 벌어지고, 황씨 할매가 죽고, 장례식이 치러지고 영화는 끝난다. 영화에서 치르는 산오구굿은 이승에서의 한과 업을 풀고 편안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저승에 가도록 하는 제의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잔뜩 모인 가운데 죽음을 앞둔 이와 그의 가족, 무당들이 즉흥 만담처럼 삶과 죽음을 얘기하고 그 사이사이에 무당의 춤과 노래를 곁들인다. 그러니까 죽음과 함께 놀면서 죽음을 친숙한 것으로 만드는 굿이다.

그런데 죽음과 함께 논다는 게 쉬운가. 〈오구〉에선 함께 놀기 힘든 것과 놀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애환이, 경상도 사투리의 걸쭉하고 진솔한 만담 안에 녹아든다. 가족들의 즉흥대사가 옆길로 가거나, 오버하면 무당이 그 자리에서 수정을 한다.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도 한마디씩 던진다. 그렇게 만들어가는 닫힌 듯 열린 형식이 아니라면 죽음을 감싸안는다는 발상은 불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황씨 할매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아들과 며느리의 표정과 대사가 웃기고, 웃다 보면 이 가족이 안쓰러워진다. 황씨 할매가 죽어 쓰러질 때는 그 아들의 마음을 빌려 슬퍼지지만, 영화는 곧바로 장례식 이벤트로 내달린다. 거기서도 마찬가지다. 이게 분명히 제의에 따른 연극이란 걸 알면서 곡을 하고 상여를 가로막는 사이에 장례 참석자들의 연출된 행동과 진심에서 나오는 행동의 구분이 사라진다.

〈오구〉에선 제의 자체와 제의에 담긴 감정과 염원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끝나갈 무렵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아픔 같은 정서가 제의와 같은 비중의 주인공으로 옆에 선다. 그렇게 〈오구〉는 독특한 영화 체험을 선사한다. 곁가지 이야기가 매끄럽게 흐르지 못하는 결점도 이 체험을 방해하진 못한다. 그건 제의를 중계하는 이 영화의 진솔한 시선에서 비롯된다. 이 영화엔 ‘우리 것은 좋은 것이야’ 하는 식의 이데올로기적 접근이나, ‘우리 것’을 신비하게 포장하는 오리엔탈리즘이 없다. 그럼에도, 아니 그 때문에 〈오구〉에 담긴 낙천성과 인본주의는 정말 ‘우리 것’ 같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