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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여자’를 끌어안다
2003-11-29

드라마 ‘로즈마리’가 ‘완전한 사랑’과 다른점은…

한국방송 2텔레비전 수목드라마 〈로즈마리〉와 에스비에스 주말극 〈완전한 사랑〉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모두 남편과 자식밖에는 모르는 지고지순한 전업주부가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겪는 과정이나 다소 철없는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설정 등 얼핏 서로 비슷한 부분을 찾는 편이 쉬워 보인다.

하지만 두 드라마를 꾸준히, 그리고 찬찬히 뜯어보면 여러가지 결정적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민한 시청자라면 그 경계선이 극적 긴장 조성과 갈등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특히 ‘남편의 여자’에 대한 시각차가 뚜렷하다. 지난 10월27일 드라마 시사회장에서 만난 〈로즈마리〉의 송지나 작가는 “완전한 통속극을 해보고 싶다”고 토로했지만, 실제 이 드라마가 전통적인 통속극의 문법과는 사뭇 다르게 비치고 있는 것도 바로 ‘남편의 여자’에 대한 색다른 접근 때문으로 보인다. 불치병을 앓는 부인을 두고 딴 여자를 만나는 남편 영도(김승우)의 설정은 드라마의 흥미를 유발하는 주요 장치이기는 하지만 자칫 불륜 드라마로 낙인찍힐 수 있기에 제작진에게는 조심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위암수술을 받고 입원한 정연(유호정)은 자신의 간병을 맡게 된, 남편의 회사 부하직원인 경수(배두나)가 허락도 받지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놀다 왔다고 오인한데다 그의 아버지까지 병원에 찾아와 한바탕 소란을 피운 탓에 그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된다. 하지만 송 작가는 이 부분에서 통속극의 함정을 피해가고 〈완전한 사랑〉과는 확연히 다른 자신의 색깔을 드러낸다. 정연은 열살 때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가 홀로 남은 자신을 길에다 버리려 했고, 자신도 모르는 길을 찾을 생각만 하면 구역질이 난다는 경수의 어두운 어린 시절 고백을 듣곤 “내가 언니 할까요”라며 소통을 제의하고 경수는 선뜻 이를 받아들인다.

지난주 집에서 만두를 함께 빚은 정연과 경수의 사이는 찜질방에도 같이 갈 정도로 발전한다. 송 작가는 “드라마가 언제까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식으로 전개되는 게 싫었다”며 “하지만 뚜렷한 갈등관계 없이 18부작을 만들려니 정말 미치겠다”고 말했다. 기존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그려지지 않은 여성끼리의 우정과 연대는 남편을 암으로 먼저 보낸 손윗동서의 안타까운 마음, 시어머니의 퉁명스럽지만 은근한 며느리 사랑에서도 잘 드러난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서로의 아픔을 알아가고 보듬어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그려져 있군요. 물론 현실에서는 아픈 사람들이 그토록 맑고 깨끗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네 드라마가 우리네 삶 속에서 드라마 속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로즈마리〉 인터넷 게시판 유선혜씨)

영도와 경수의 관계가 아직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은근하게 복선형태로 진행되는 〈로즈마리〉에 비해 〈완전한 사랑〉에서는 더 구체적이고 노골적이다. 시우(차인표)와 유치원부터 같이 다니며 짝사랑을 키워온 지나(이승연)는 남의 남자가 된 시우를 잊지 못하고 기습 키스를 하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토로하고 “너의 아기를 갖고 싶다”고 떼를 쓴다. 물론 시우의 부인 영애(김희애)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이해하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쓰여 남편한테 그 감정을 터뜨리기도 한다. 〈완전한 사랑〉이 최근 상승세를 타 시청률 30%를 향해 치닫는 것은 바로 김수현 작가 특유의 통속성이 유감없이 드러난 까닭이다. 남편의 여자뿐 아니라 “오백년 재수”라며 며느리를 핍박하는 시아버지 박 회장(김성원)이나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시어머니보다 더 혹독한 시누이(박지영)의 ‘송곳 같은 대사’는 시청자에게도 비수처럼 다가온다. 시어머니(강부자)도 며느리에게 그렇게 따뜻하지 않고 오히려 냉랭한 편이다.

시청자들이 시한부 삶을 판정받은 영애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것은 물론 김희애의 탁월한 연기 탓이지만 그를 둘러싼 통속적인 드라마 환경 덕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로즈마리〉는 밋밋하기도 하지만 뻔하고 상투적인 스토리에 질린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남편 영도가 아내의 병세를 알고 혼자 차를 마구 몰고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려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이나, 경수와 함께 처음 찜질방에서 정연이 등에 떠밀려 노래자랑에 참가했다 〈남행열차〉로 김치냉장고를 타고 “글쎄 좀더 진작 이러구 살았으면 좋았을걸…”이라고 한탄하는 장면 같은 것은 정말 눈물겹다.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