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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로맨틱 코미디 <러브 액츄얼리>
2003-12-02

12가지 사랑의 에피소드를 '냠냠'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 국제공항의 거대한 대합실. 가족과 연인, 친구와 동료들이 해후하며 나누는 뜨거운 포옹과 감격스러운 입맞춤이 퍼레이드처럼 잇달아 스크린에 느린 화면으로 클로즈업된다. 지극히 평범한 공항의 일상을 벅차오르는 사랑의 풍경으로 바꾸어 펼치는 <러브 액추얼리>의 첫장면은 이 영화의 원제이자 주제를 인상깊게 열어보인다. ‘사랑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Love Actually is All Around). 이처럼 <러브 액추얼리>는 하나의 특별한 사랑이 아니라 세상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다양한 사랑의 풍경들을 각각의 접시에 조리해내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오는 크리스마스의 성찬을 차려내는 로맨틱코미디다.

<네번의 장례식 한번의 결혼식> <노팅 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의 각본을 썼던 리처드 커티스가 처음으로 감독을 맡은 영화로 그의 각본이력이 말해주듯 할리우드식 로맨스의 달콤함에 한발을 담그면서도 다른 한발은 기름기 빠진 중산층 소시민의 웃음를 짚어내는 그의 장기가 오롯이 녹아 우리 시대 사랑의 12폭 제단화를 완성한다. 특히 커티스라는 브랜드가 불러모은 배우들의 화려한 진용은 짧고 소박한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크리스마스 트리의 알전구처럼 반짝거리는 광채를 입힌다.

커티스의 영화에서 늘 주인공을 맡았던 휴 그랜트가 영국 수상으로 등장해 나이어린 식음료 담당비서 나탈리(마틴 맥커친)와 빠지는 사랑이나,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휴 그랜트의 연적으로 등장했던 콜린 퍼스가 애인으로부터 배신당한 뒤 떠난 프랑스 별장에서 만난 포르투갈 가정부와 말없이(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교감하는 사랑은 로맨스라는 기본골격에 가장 충실한 에피소드. 그러나 감독은 아름답지만 뻔한 낭만적 사랑 울타리 바깥의 사랑을 배치하는 데 더 섬세한 재능을 보여준다. 짝사랑하던 회사 동료와 마침내 사랑을 나누게 된 순간, 정신이상으로 요양원에 입원한 동생에게서 계속 전화가 걸려오자 결국 남자를 포기하고 동생에게 달려가는 사라(로라 리니)의 에피소드나 한물간 로커에다 망나니인 자신을 묵묵히 수발해온 매니저 조에게 크리스마스 이브날 술 한병 들고 찾아가는 빌리(빌 나이히)의 따뜻한 우애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넓은 주름을 폭신하게 펴보인다.

여기에 가장 친한 친구의 아내를 향한 한 남성의 비밀스럽고 가슴아픈 고백과 남편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금목걸이가 다른 여성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임을 깨닫고 흐느끼는 중년 여성 캐런(엠마 톰슨)의 고통을 겹쳐 놓으며 영화는 사랑 그 너머, 또는 그 이후의 풍경까지 세밀하게 그려넣는다. 로맨틱코미디의 사탕발림에 질린 관객들마저 무장해제시키는 감독의 힘은 이처럼 가슴 아린 사랑의 풍경들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영화는 크리스마스 5주 전부터 당일까지, 빌리의 코믹한 재기곡 ‘크리스마스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Christmas is All Around)의 인기순위 변동과 함께 이 모든 이야기들을 붉은 리본으로 하나의 포장 안에 묶어놓는다. 방송 중에 “청소년 여러분 마약을 사지 마세요, 인기스타가 되면 저절로 생기니까요” 떠벌이는 빌리의 주책이나, 사랑의 감정에 괴로워하던 수상이 집무실에서 ‘선배’인 대처 전 수상에게 “댁도 이랬수” 독백하는 등 수시로 터지는 커티스표 코미디의 칼칼한 웃음들이 건빵 속의 별사탕처럼 영화의 감칠맛을 더한다. 빌리가 부르는 주제곡을 비롯해 비틀즈의 ‘올 유 니드 이즈 러브’, 조니 미첼과 다이도의 매력적인 목소리 등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타고 흐르는 음악들도 빼놓을 수 없는 <러브 액추얼리>의 매력이다. 5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