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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이슈] 영상자료원은 고민 중
2003-12-02

지난 8월부터 한국영상자료원의 원장이 바뀌었다. 워낙에 비타협적인 글쓰기로 악명 높던(!) 이효인 교수(사진)가 원장으로 가게 되면서 지지부진하던 영상자료원의 활동이 뭔가 새롭게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높다. 그래서일까? 채 석달이 되지 않은 시간 동안에 영상자료원은 상당히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발전방안에 대한 공청회가 영화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면서 제법 성황리에 이루어졌고, 자료원 내에 한국 영화사 연구팀이 생겼는가 하면, 서울독립영화제의 상영작들을 인터넷으로 상영하는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영상자료원에 대한 영화계(나아가 문화계)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법적 근거도 없는 임의단체로 문화관광부의 눈치를 보며 지원금을 받던 처지에서, 2002년 영화진흥법 개정을 통해 최소한의 법적 존재 근거를 가지게 되었고, 상암동 DMC(Digital Media City)에 새집을 장만하여 이사갈 계획도 잡아두고 있다. 아예 영상자료원을 방송영상자료까지 포함하는 국립영상아카이브로 개편하자는 안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영상자료원의 입장에서는 바야흐로 희망과 기대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와 달리 현재의 상황은 그다지 밝지 못한 것 같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돈없는 사람을 돕자고 3000cc 승용차를 빌려주면서 유지비는 알아서 하라고 하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 없다.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봐야 애물단지만 될 뿐이다. 그나마 주차공간이 없으면 둘 데도 없어서 정중하게 고사해야 할 판이다. 이럴 땐 차라리 매달 생활비라도 얼마씩 보태주는 것이 훨씬 고마운 일일 것이다. 예가 좀 과장되긴 했지만, 이것이 현재 한국 정책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로만 업적과 성과가 평가되다보니 일상적인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데 대한 투자는 인색하게 된다. 예컨대 수백억원 들여서 건물은 지을 수 있지만, 기존의 업무 예산을 2억∼3억원 늘리려면 기관장이 예산 편성기에 기획예산처에 며칠씩 출퇴근하면서 로비를 해야 하는 판이다.

영상자료원의 고민도 여기서 시작된다. 최근 영상자료원은 원본필름들을 복제한 뒤 원본은 영구 보존할 계획을 세운 모양이다. 자체 조사를 해보니 보관하고 있는 수천편의 필름들을 복제하는 데 꽤나 많은 예산, 인력과 장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일상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예산을 따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새 건물도, 국립영상아카이브도 결국은 영상자료를 제대로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한 준비단계임을 감안한다면, 영상자료원이 겪고 있는 이러한 어려움은 참으로 ‘아햏햏’한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현재 영상자료원은 홈페이지(www.koreafilm.or.kr)를 통해서 1940년대 영화 6편을 온라인으로 상영 서비스하고 있다. 필자가 영화연구자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런 영화들은 국보로 지정되어야 마땅하리라 본다. 도대체 한국 근현대사에 영화필름만큼 가치있는 사료가 또 있을까? 그런데 현재는 국보 지정은커녕 최소한의 보존 비용을 구하지 못해 담당기관은 전전긍긍하고 있고, 그 사이에도 필름들은 조금씩 산화해가고 있다. 차제에 영화인들이라도 나서서 ‘한국 영화유산 보존’을 위한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조준형/ 경희대 연극영화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