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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끼리의 교감이 최고 자극,<마스터 앤드 커맨더> 폴 베타니
김혜리 2003-12-03

<뷰티풀 마인드>에 이어 러셀 크로와 또 한번 공연한 느낌이 어떠냐, 역시나 그게 첫 질문이군요. 맘에 드는 인간과 두번 일하니 다행이지 싫은 사람과 연달아 영화 찍으면 그건 악몽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러셀과는 집도 멀어서 일 아니면 같이 홍차 한잔 할 시간도 없다구요. 사람들이 케미스트리, 케미스트리(chemistry: 두 배우의 교감이 낳는 상승작용)하는데 저는 그런 게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다만 두 배우가 팽팽히 맞상대를 하다보면 상대방이 꼭 나를 한대 칠 듯한 팽팽한 모멘트가 닥치거든요. 그때 단순한 경쟁심이 아니라 “난 네가 더 훌륭한 연기를 하길 원해!”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상대가 있는데 러셀이 그런 경우입니다.

<마스터 앤드 커맨더> 원작의 팬들이 내가 닥터 스티븐 마투린 역을 하기에는 키가 너무 크다고 항의했다면서요. (울먹이는 척하며) 맞아요. 전, 키가 너무 큰 놈이에요, 흑흑. 하지만 마투린과 내가 다른 게 어디 키뿐인가요? 저는 스페인과 아일랜드 피가 섞이지도 않았고, 외과의사도 아니고 첼리스트도 아니고 박물학자도 아니고 프랑스 대혁명을 목격하지도 못했다구요. 그러니 키를 ‘빼는’ 것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다구요. 그나저나 몸무게는 굶어서 줄인다지만 키는 어쩐답니까?

제니퍼 코넬리랑 사는 기분이 궁금하시다구요.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 듯) 흠, 괜찮은 여자죠. 아들 이름은 <도그빌>에서 공연한 동료 배우 스텔란 스텐스가르드를 본떠 스텔란으로 지었습니다. 스텔란은 자기 자신의 존재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지만, 연기는 심각한 탁월한 배우죠. 에이 참, 섹스와 연기는 말이죠. 하기에는 무진장 즐겁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죽도록 민망하다는 점에서 똑같아요. 스텐스가르드와 나는 “죽어도 헬스클럽 같은 데 다니는 추태는 부리지 말자”고 약속했는데, 아시다시피 나는 <윔블던>에서 테니스 선수 역을 하느라 헬스클럽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거든요. 그런데 스텔란이 전화를 걸어서는 자기도 맹세를 어겼다고 털어놓아서 한시름 놨어요. “에구, 검을 휘두르는 연기를 하래. 내가 휘둘러본 검이라곤 마티니에 넣는 올리브에 꽂힌 플라스틱 칼뿐인데 말야”라고 투덜거리더구만요.

<도그빌>과 <마스터 앤드 커맨더>의 세트 중 어느 쪽이 지내기 즐거웠냐고요? 하하, 라스 폰 트리에는 미친 사람이에요. 촬영을 하러 스웨덴 공항에 내려 마중나온 폰 트리에 감독과 난생처음 대면했는데 다짜고짜 “폴, 포르노 보고 싶어요?” 하고 묻더군요. 당황해서 입이 얼어 있는데 막무가내로 비디오숍에 가다니 포르노를 한 보따리 빌려서 뒷좌석에 쏟아넣지 뭡니까. 세트에 도착해 니콜 키드먼(장차 나와 로맨스를 연기할)이 마중을 나왔는데 라스 폰 트리에는 대뜸 “니콜, 폴이 갖고 온 포르노 테이프 좀 봐요!” 하고 뒷좌석을 가리켰어요. 나는 갑자기 열네살로 돌아가 엄마한테 변명하듯 벌게져서 “어어, 내 포르노 테이프 아니에요”라고 손을 내젓고만 있었어요. 상황이 수습된 뒤 니콜과 나는 “여기 분위기 좀 이상하죠?” “네, 좀 이상해요” 하고 수군거렸죠. <도그빌>은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그런 식이었어요.

연기란 혼자 하는 연습이 무의미해요. 예컨대 <마스터 앤드 커맨더>에서 제가 제 배를 수술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집에서 누워 있다가 “가만, 나 중요한 신을 앞두고 있군. 연습이나 할까?”하고 거울 앞에서 연필로 배를 찌른다칩시다. 조금 시늉을 하다가 내 꼴이 민망해서 “에잇, 술이나 마시자!” 이렇게 된다구요. 그런데 현장에서 그럴듯한 메이크업을 하고 세트에 누워 진지한 표정의 배우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자연히 연기가 나와요. 그래서 영화를 집단예술이라고 부르는 거라구요.

*이 인터뷰는 지난 10월 미국 샌타모니카에서 열린 <마스터 앤드 커맨더> 기자회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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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이십세기 폭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