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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통해, 부재를 통해 이야기한다 <사랑의 방 : 베르나르 포콩 사진집>

베르나르 포콩 지음 I 심민화 옮김 I 마음산책 펴냄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사진작가 베르나르 포콩(1950∼)에게는 순간을 포착한다는 말보다는 창조한다는 말이 어울릴 듯하다. 그는 메이킹 포토 혹은 미장센 스타일, 그러니까 연출 사진 혹은 장면 만들기 스타일로 유명하다. 햇빛이 곱게 스며든 방에 개어진 옷가지들이 무지개색 층을 만들며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 예쁜 방 모습 옆에 포콩은 이렇게 적어놓았다. ‘언제나 이 생각, 눈만 감으면 될 것 같은, 그리고는 꿈속에서 사랑했던 사람들,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들, 그리고 젊음만 되찾으면 될 것 같은 생각.’

포콩이 가장 사랑했던 시간이 유년과 청춘의 시기라는 점, 그러니까 이미 지나가버려 다시는 살 수 없는 부재의 시간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만든다. 앞서의 예쁜 방 외에도 활활 불타는 방, 어질러진 방, 빛이 가득한 방, 영상이 일렁이는 방 등, 다양하게 창조된 순간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그 공간을 통해 사람들은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과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 그러니까 다양한 시간을 상상하게 된다.

소르본에서 철학을 전공했기 때문일까? 포콩의 다음과 같은 글에서 그의 사진 작업이 사진 작업 이상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곧 깨닫게 된다. 하여, 잃어버린 것의 영광을 노래하기로 결정하자, 기적이 일어난다. 부재에 적응하려고 세심히 노력함으로써, 현존의 매우 확고한 인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사진은 종교적 실천이다. 얻으려 생각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구하려 생각하는 것을 구하지 못하지만, 더 많이 얻고, 더 많이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